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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가도 못하다 시위에 합류한 황당사건

세상살이

by 채색 2011. 12. 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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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감사>





오랫만에 안경을 바꾸었습니다. 네모난 안경에서 동그란 안경으로 바꾸었죠. 역시나 남대문 시장이라 그런지 싼 것 같았습니다. 바가지를 씌우지나 않을까 걱정했었습니다만 몇 년 전에 갔던 안경점을 또 간 덕분에 그러진 않았습니다. 그곳을 우연치않게 찾은 것도 행운이었죠. 


신촌에서 친구와 만날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곧장 가려니 너무 이르기도하고 마침 그 날 있던 FTA 반대집회 상황이 어떤지나 볼 겸  잠깐 광화문으로 향했습니다. 내려서 잠깐 둘러본 뒤 환승으로 신촌에 갈 요량이었습니다. 

YTN 빌딩 앞에서 버스를 타 광화문으로 향했는데, 시청에서부터 시작된 경찰 차벽은 끝도 없어보였습니다. 파이낸스 센터 앞에서 내렸습니다. 정류장은 온데간데 없고 촘촘히 붙은 경찰버스만 빼곡했습니다. 인도로의 진입이 전혀안되고 차도로 떨궈진 모양이었습니다.

광화문 방향으로 걸어가다보니 무전기를 든 경찰들이 있어서 항의했습니다.

나: "아저씨! 여기 버스정류장을 다 막아놓으면 어떡합니까?!"
경찰: "불법집회때문에 막아놓은 거에요. 어쩔 수 없어요"
나: "아니 집회는 집회고 사람들이 지금 차도로 이렇게 걸어오고 있잖아요?"
경찰: "양해바랍니다"
나: "어휴.. 교통 경찰이라도 세워놔야할 거 아닙니까? 여기 걸어오고 있는 사람들 다 버스에서 내린사람들 아니에요!" 

| 버스에서 차도로 내려 걸어오는 사람들. 인도가 완전히 통제당해 시청방향으로는 도로로만 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안전통제를 하는 경찰관이 한 명도 없었다. (핸드폰 사진, 집회참가할 의사가 없었으므로 사진기를 안들고 갔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사람들이 차도로 걸어다니는 걸 보고도 그렇게 무관심할 수 있는것인지. 다행히 제가 항의한 경찰이 일대 책임자였는지 무전으로 교통경찰을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광화문 네거리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는데도 인도로 들어가는 길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광화문 네거리 중심에는 집회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쪽으로는 못들어가게 되어있었습니다. 일단 인도로는 들어가야겠다 싶어서 한참을 더 걸어가니 경찰버스 사이에 빼곡히 서 있던 경찰들사이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광화문 우체국을 지나 동아일보 쪽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지하도가 있었죠. 그런데 경찰들에 의해 막혀져 있었습니다. 경찰들 너머로 또다른 무리의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건물쪽을 약간 터 놓았으니 조금 뒤에는 그마저 막아버려 어딜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그곳의 시민들은 경찰에게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었습니다. 광화문 방향으로 가는 길목을 완전 차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횡단보도는 물론, 지하도까지 철저하게 막아버렸습니다. 집회인원들이 늘어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보였습니다. 지하철을 나오려는 사람, 지하철로 가려는 사람들, 그곳을 지나려는 사람 모두 경찰에게 통제당했습니다.


| 지하철역 출구가 경찰들로 봉쇄돼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었다.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역 밖으로 나오는 할아버지.

잠깐동안 집회에 참가하려고 했던 저의 의지도 그곳에서 접어야 했습니다. 아예 집회장소로의 접근이 불가했기 때문입니다. 시청역까지 걸어가 지하철을 타면 되겠다 싶어 '시청역 가려는데 가면 안될까요?'라는 질문에 그곳을 막던 경찰은 '안됩니다'라고만 반복하고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돌아나왔습니다. 광화문 우체국을 지나면 횡단보도가 있었기에 그곳을 건너가 버스를 탈 생각이었죠. 하지만 경찰버스들과 경찰들은 꼼꼼하게, 어디로도 지나갈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황당했죠. 횡단보도를 막은 경찰에게 "여길 건너가야하는데 좀 나가면 안될까요?" 라고 하니 "저쪽으로 돌아가세요. 여긴 안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살짝 짜증이 나기 시작했죠.

그 시기에 동아일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광화문으로의 합류를 포기하고 흩어져 다른 곳으로 향하는 중이었습니다. 특별히 구호를 외친다거나 행진을 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저 '어딘가'로 가는 모양새였죠. 

경찰은 그걸 알았는지 금세 인도통행을 막아버렸습니다. 영풍빌딩 앞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물론 그 앞의 버스정류장도 완벽하게 통제당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들은 황당의 극치를 맛보았을 겁니다. 저도 이미 집회참가를 포기하고 약속시간에 맞춰 가야했기에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그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고 버스정류장을 막고있던 경찰에게 부탁했습니다.

나 : "여기 좀 나갈게요!"
경찰 : "지금은 안됩니다. 저쪽으로 돌아가세요."
나 : "저쪽에서 이쪽으로 가라고 해서 이쪽으로 왔는데요."
경찰 : "그래도 여기는 안됩니다."

화가 났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항의했습니다. 그 중 어떤 아주머니는 "일하러 가는데 왜 막아! 당신들이 돈 대신 벌어줄거야?!" 라며 정말 화가나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그곳의 경찰은 귓등으로도 안듣는 것 같았습니다.

책임자로 보이는 경찰에게 차분하게 물었습니다.
"아니 여기 아주머니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나가겠다는데 왜 막으시는거에요?" 그는 처음에는 아무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 화가나더군요.
"경찰관님! 지금 무시하시는거에요?" 라고 화를 냈고, 그제서야 그는 대답했습니다.
"아니, 사정은 알겠는데요. 지금 여기로는 못나갑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미치겠더군요. 약속시간은 다 되어가고 길은 다 막혀있어 도무지 갈 방법이 없고. 다시 반대방향으로 돌아나오다 보니 청계천 쪽으로 향하는 작은 골목이 빌딩사이로 있더군요. 다행히 그곳으로 빠져나와서 종각역쪽으로 갔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집에 갈 생각이었으나 경찰들의 막무가내 통제를 보니 화가 나 그냥 갈 수는 없더군요.

한미 FTA 반대 집회에 대해 집회할 수 있는 장소를 모두 통제해버린 것은 경찰입니다. 헌법 제21조에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는 조항이 분명하게 나와 있거든요. 넓은 장소에서 (예를들어 시청광장 등) 집회를 하게 해 주고 안전관리, 교통관리 등을 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민들은 보장된 장소에서 마음껏 목소리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겠죠!

하지만 경찰은 한미 FTA 와 관련된 집회에 대해서는 집회신고도 받지않고 모든 공간을 통제해 버렸습니다. 그에 어쩔 수 없이 정치인들이 손발벗고 나서서 합법적인 정당연설회를 진행하게 된 것이겠죠. 하지만 그마저도 경찰은 철저하게 통제했습니다. 이는 대놓고 민주주의를 짓밟는 행위입니다. 독재국가에서나 일어날만한 일이 우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가기 위해 제일은행 방향으로 길을 건넜습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또 인도는 경찰들이 막고 있어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농협 앞쪽에서 또다른 무리의 시민들이 광화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막는 중이었죠. 그 일행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막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집회 참가는 힘들겠다 싶었습니다. 화 난 마음을 쓸어내리고 기다리는 친구에게로 가려고 발길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광화문 네거리 쪽에서 종로 방향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길은 금세 사람들로 가득메워지게 된 것이죠. '비준무효, 명박퇴진'을 외치면서 걸어왔습니다. 선두에는 정당연설회를 하던 의원님들이 걷고 있었습니다. 약속장소에 가려던 저는 본의 아니게 행진행렬 속으로 포함이 돼 버렸습니다. 그것도 거의 선두에 서게 됐죠. 

경찰은 급하게 이 행진대열 주위를 둘러쌌습니다. 시민들은 르메이에르 빌딩 앞 쪽에서 집회를 하려다가 안되겠는지 다시 일어나 종각쪽으로 향했습니다. 처음에는 경찰들이 벽을 만들어 막았으나 의원님들이 선두에 서 계셨기에 길을 비켰습니다. 하지만 의원님들을 포함한 일부만 내보내고 나머지 시민들을 막아섰습니다.

화가난 시민들은 '으쌰'를 외치며 경찰벽을 뚫으려 했습니다. 젊은 의경들이라 할지라도 오랫동안은 막지 못하더군요. 금세 뚫려서 수많은 시민들이 한꺼번에 튀어나가버렸습니다. 그 와중에 제 앞사람이 넘어져 저도 넘어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저 뒤 부터는 돌아나가서 피해를 면할 수가 있었죠. (아찔 했습니다.ㅜㅜ)

| 분노한 시민들은 결국 도로로 쏟아져 나왔다. 집회 장소를 보장해주지 않는 경찰이 부른 결과다.

결국 집회는 종각 사거리 일대 도로를 점거한 채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그 상황까지만 본 뒤 약속장소로 향했습니다. 종각역 입구 주변에도 집회 참가자들이 엄청 많더군요. 어디서나 사람들은 '명박퇴진, 비준무효'를 외쳤습니다.

저는 이렇게 도로를 점거하고 집회할 수 밖에 없는건 순전히 경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든 정치인이 더 큰 문제겠죠.) 집회 장소만 안전하게 확보해 준다면 집회 때문에 일어나는 교통대란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하면서 진짜 국민의 목소리는 전혀 듣지 못하고..아니 듣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예 '입닥치'라고 어디에도 집회를 하도록 해주지 않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누군가의 입을 막게되면 더 큰소리로 소리칠 수밖에 없습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시민들은 더욱 더 분노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는 일선 판사들 마저도 대거 한미 FTA 문제점에 대해서 적극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사안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겠지요.

시민의 입을 막으려고만 하지말고, 제발 좀 들으십시오! 그게 민주주의 아닙니까? 우리나라 독재국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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