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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시민이 북한지령받아 나왔다구요?

세상살이

by 채색 2011. 12. 7.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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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감사>


얼마전 동원훈련을 다녀왔습니다. 군대를 제대한 뒤 짧게는 4년, 길게는 6년동안 매년 2박3일동안 징집되어 훈련을 받습니다. 다른말로 예비군 훈련이죠. 이곳에서는 주로 병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초적인 군사훈련(교육)을 받습니다. 


교육 중에는 강당에서 하는 시청각 교육도 있습니다. 예비군들이 가장 좋아하는 교육입니다. 왜냐하면 맘 껏 졸아도 강당이 넓어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훈련들은 졸 수도 있지만 조금씩은 몸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들이 있어서 여간 귀찮은게 아닙니다. 

얼마전 갔던 그 동원훈련도 마찬가지로 시청각 교육이 있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7시 쯤 했는데 '맘껏 졸아야 겠다'고 맘 먹고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제가 속한 내무반이 가장 먼저 도착했던 터라 본의 아니게 제일 앞줄에서 세번 째 줄에 앉게 되었습니다. 무대를 살짝 올려봐야 하는 거라서 바로 앞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총 두시간으로 첫번째는 강사가 강연을 하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영상을 시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교육이 시작되며 졸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앞 자리에 앉은 탓에 잠이 오지 않더군요. 강사가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자 해서 그냥 지켜보기로 맘 먹었습니다.

모 대학교 북한관련 전공을 하고 있다는 그 교수는 처음부터 북한의 힘든 실상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두만강을 넘어 탈출하는 사람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총을 쏘기도 한다며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쏟아냈죠. 그러면서 자연스레 북한 정권이 남한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군사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제가 군대 있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북한 전력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갔습니다. 그러면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피격 사건을 내세우면서 기회가 있을 때면 공격을 해 남한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는다고 했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아직도 미제사건으로 알고 있었는데 군 내에서는 북한소행으로 몰아가는 듯 했습니다.

분위기는 급반전되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해서 비판했습니다. 여러 북한 도발에 대해서 전 대통령 탓으로 몰아가는 듯 하더니 이명박 대통령의 현 대북정책이 '옳다'는 식으로 결론을 짓더군요. 게다가 대북지원이 없는게 아니라 예전에 비해 50%정도는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천안함 사건은 좀 특별하게 다루었는데, 이것을 북한 소행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이라며 일축했습니다. 언론이나 여론, 국제사회에서까지 이 사건은 '북한 소행이다'라는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했고, 사람들은 당연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을 밝혀달라는 것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었죠. 

그리고 북한의 사이버 테러에 대해서 비중있게 다루었습니다. 슬라이드 제목이 'USB 하나로 국가시설 정지가능' 같은 것이었죠. 근거로 초등학교에서 매주 한 시간씩 컴퓨터 교육을 하고 있으며,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두시간 이상씩 컴퓨터 교육을 한다고 했습니다. 황당해 말이 안나왔죠. 하지만 몇몇 예비군들은 '그런 일이 있을수가!'라는 뜻인지 '오...'하는 감탄사를 내뱉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이 하루에 몇시간동안 컴퓨터를 배우고 만지는 것에 비하며 '새발의 피' 수준임에도 '국가시설 마비'같은 자극적인 용어로 과장을 했습니다.

강사는 '북한정부는 이런 사건을 통해서 남한사회를 혼란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는데 이에 동조세력이 많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슨 용공세력인지 용궁세력인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남한사회 혼란을 통해 전복을 시도한다는 것이지요. 

너무나 깜짝 놀라서 한참동안을 입벌리고 강사를 쳐다봤습니다. 어떻게 교수라는 작자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까 너무나 의심스러웠습니다. 평소 읽지도 않지만 무슨 '조선일보 사설'도 저정도는 아닐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비군들을 자신들의 주장에 세뇌되도록 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당황스러워 주변을 돌아봤지만 이 강연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았죠.

| 광우병 사태 당시 촛불집회 인파. 이들이 북한지령에 의해 나왔다고 하는 발상은 대체 누가 퍼트렸을까? 사진=오마이뉴스 권우성


다음날 모 소령과 예비군 몇 명이 그의 사무실에서 작은 다과를 나누었습니다. 그 소령은 처음에는 예비군들과 인사도 나누고 살아가는?이야기도 듣고 하는 듯 하다가 천안함과 연평도 얘기를 꺼냈습니다. 어제 그 강사와 똑같은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남한 사회에 간첩을 심어두고 사회혼란을 주동한다는 그 이야기 말입니다.

오래전부터 그런 북한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는데, 지금은 동원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광우병 사태 때 촛불시위를 언급했습니다. 촛불시위를 선동하고, 사람들을 동원했던 것은 다름아닌 북한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 용궁인지 용공인지 하는 세력을 지칭하는 것이겠죠. 순간 놀라 소리칠 뻔 했습니다.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을 잘 살펴보면 그런 사람이 있을거라고 단언했습니다. 

제가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만약 말했었다면 단박에 잡아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주동자라는 것은 모두가 시민이었고, 또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에 대해 북한을 언급하며 용궁이니 선동이니 친북좌파니 빨갱이니 하는 단어들을 서슴없이 말하는 자체가 굉장히 신기해 보였습니다. 

4대강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으며 부당함을 알리던 저의 행동도 그의 눈에는 '친북좌파', '빨갱이' 였을 겁니다. 사회의 혼란을 일으키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북한의 지령을 받아 그런 행동을 하고 있을거라고 유추하겠죠? 생각만해도 끔찍했습니다.

요즘 '한미FTA 비준무효'를 위해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사람들은 이들을 두고 '체제전복세력', '친북좌파', '북한 지령을 받은 간첩', '용궁인지 용공인지 그 세력'으로 볼 것으로 생각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기가찹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는 인혁당 사건 등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을 간첩 죄를 덮어씌어 심지어 사형을 한 적도 있습니다. 독재정부에 맞서는 사람들에게 혹독한 고문을 가했던 것은 이미 다들 잘 알고 계실겁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저런 인식을 하고, 장병들에게 괴상한 정신교육을 하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해당 사안을 두고 진지한 논의를 해야할 판에 '저들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 행동하는 사람들이야'라고 괴상하게 취급하고 묵과해버리면... 대체 어떡하라는 거죠?

이런식의 세뇌교육이 전 군인들을 상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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