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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무장강도?

달려라자전거

by 채색 2009. 3.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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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자전거 여행을 하던 중, 파키스탄 서부 사막에서 총으로 무장한 사람을 만난 이야기 입니다.^^a

이시다 유스케씨가 자전거 여행을 오랫동안 하고 쓴 '가보기 전엔 죽지마라'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제가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고 있던 때 마침 책이 나와서 읽어봤었죠. 7년 반동안이나 자전거를 타고 곳곳을 누빈 여행기였습니다. 그 중 가장 관심이 갔던 것이 다름아닌 여행지에 대한 안전문제였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세우며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지요.

다름이 아니라 그는 남미의 어느 곳에서 무장강도를 만납니다. 권총을 든 두 사람에게 자전거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소유물을 뺏기고 맙니다. 거의 빈털터리 상태가 되어 굉장한 고생을 했죠. 물론 그것을 뺏아간 강도를 찾지 못합니다. 워낙 많은 범죄가 일어나다보니 수많은 용의자가 있어서 사진이 담긴 용의자 목록을 보고도 지목하지 못하지요.

그것을 읽으며 자전거 여행을 강행해야하나 심히 걱정을 하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행에 대해서는 막연히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런 일이 제게 일어나지 않으란 법은 없으니까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요? 그 책에서 읽었던 그 내용은 까맣게 잊고선 여행을 출발했습니다.

중국 2개월, 티베트 2개월, 네팔 3개월, 인도 3개월을 여행한 후 파키스탄에 도착했습니다. 심란한 도시 라호르도 구경하고 똑 부러진 이슬라마바드, 배낭여행의 블랙홀 훈자마을 등 비교적 안전한 파키스탄 동부 여행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이란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파키스탄을 여행해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2007년 당시에 파키스탄 서부 여행은 매우 위험했습니다. 이미 한국 자전거 여행자 중에서도 물탄이라는 도시 안에서 무장강도를 만난적이 있었고, 서부 발루치스탄 지역은 무장독립투쟁을 꾸준히 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탓에 사막 곳곳에는 탈레반 역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란의 국경도시 '타프탄'까지 향하는 버스나 기차를 이용할 수도 있었습니다만, 비슷하게 위험했습니다. 오히려 버스나 기차를 노리는 전문 강도단 같은 이야기도 제게 흘러들어오기도 했죠. 당시에 '몇달전 버스를 타고가던 중국인 관광객이 당했다.'는 이야기를 현지인에게 생생히 들을 정도였으니까요.

다행히 자전거여행의 특별함으로 경찰의 경호를 받을 수 있다했습니다. 이란방면에서 넘어오는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물어보니 경찰들이 지겹도록 쫓아온다고 했습니다. 또한 잠 역시도 경찰서에서 자야만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여행자는 자기가 앞서 잤던 경찰서가 폭파되기도 했다며 쓴 웃음을 짓기도 했죠. 경찰의 보호도 그리 안전하지 못하다는 얘기였습니다.

결국엔 강행했습니다. 속으로는 '죽으면 그뿐이다' 라며 위로했죠. -.-a 더 정확하게는 'ㅅㅂ 모르겠다' 라고요. 라호르에서부터 퀘타까지 겁나게 달렸습니다. 50도가 웃도는 날씨가 계속됐습니다. 여러분은 그 후라이팬 같은 날씨를 상상하기 힘드실겁니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가히 '환상'적이었죠. 그런 날씨 속에서 천km가 넘는 거리를 달렸습니다. 그러다 위험하기 짝이없는 '퀘타'라는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실크로드 상 매우 중요한 도시 중 하나지요. 그럼에도 도심 구경은 하기 힘들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날, 숙소를 정하는데도 엄청난 고난이 뒤따랐죠. 외국인을 묵게하면 각종 강도들에게 목표가 되기 때문에 대부분 회피합니다. 낯선 그런 도시에서 이런 경우를 당한다면 낭패스러울 것입니다. 다행히 한 숙소에서 받아주어서 몇일을 보냈습니다. 제가 떠난 몇일 뒤에 도심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는 얘길 들었죠.

'칸다하르'라는 도시 아시죠? 2007년도의 최고의 이슈였던 '단기선교단 납치사건'의 배경이 되었던 도시입니다. 퀘타 바로 위가 칸다하르 되겠습니다. T.T

서쪽으로 향했습니다. 정말 큰맘먹고 출발했죠. 퀘타에서 몇일동안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릅니다. 그 길이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그런 고민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좀 '똘기'를 한가득 담아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사막이라는 이유로 1.5리터짜리 물도 6개나 준비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무거운지 생각해보면... 어휴...

첫날에는 정말 잘 달렸습니다. 첫번째 검문소 이후부터는 예상대로 경찰이 경호를 해주었습니다. 자전거 속도에 맞추어서 천천히 따라와주었죠. 한 100km 정도 달렸을 때쯤, 시간은 오후 3시가 되었고, 경찰 검문소를 만나 밥을 해먹었습니다. 건물은 없고 천막을 쳐놓고 지나가는 차량들을 검문했죠. 그곳 경찰들은 자신들이 먹는 '난'도 주고 짜이도 끓여주었습니다. 말은 '전혀!' 통하지 않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좋은 분들이었죠.

배가 부르고 피곤하니 잠이 와서 그 옆에 대충 텐트를 치고 잤습니다. 해가 질 때쯤 어느 경찰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선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텐트를 걷고 취사도구를 다시 정리하던 것이 얼마나 귀찮던지. 그곳은 위험하니 20여 km 떨어진 큰 검문소에서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힘은 들었지만 그곳까지 가까스로 갔습니다. 가끔씩 나타나는 차의 소리를 제외하고는 침묵뿐인 곳이었습니다. 하늘의 별소리가 들릴 것 같던 곳이었죠. 굉장히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 좋은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은 그들이 가까운 다음 마을까지 반 강제적으로 차를 태워주었습니다. 자기들의 관할에서 빨리 내쫓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곳에서부터는 그 누구도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또한 길을 지나는 차량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삼십 분에 한대 지나가는 정도? 였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큰 짐을 싣고 가는 대형 트럭이 대부분이었지요.

마른 바람과 외로움이 불어왔습니다. 그늘같은 것은 거의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주 가끔씩 나타나는 마을에서 사람들이 심어놓은 큰 나무를 제외하고는 발목 아래의 풀들 뿐이었습니다. 하늘의 태양과 땅위의 아스팔트는 온 몸을 끓여주었습니다. 도중에 자동차 여행을 하는 스위스인 부부가 차를 세우고는 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브레이브'를 연신 외쳤습니다. 필요한 것이 없을까 몇 번 물었지만 저는 '괜찮다'고만 했죠. 그러나 실제로는 그분들에게 태워달라는 말을 하고싶어 미칠지경이었습니다. 제가 괜찮다는 반응을 여러번 보이자 그들은 떠나갔죠.

경찰서가 나타나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지쳐갔죠. 100km 정도를 달렸을 때 큰 총을 든 사람을 만났습니다.

총을 든 사람이라면 경찰이겠거니 생각하고 그에게 접근했습니다. 그리곤 그에게 '폴리스?'라고 물었습니다. 그곳 발루치스탄에서는 '발루치어'를 쓰기 때문에 그는 제가 조~금 알고있는 '우르드어'는 전혀 알지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폴리스?'했던 것이죠. 경찰차에는 로마자로 'police'라고 적혀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물으면 알거라 생각했죠.

그러나 그는 '무슨?'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알 수 없는 '발루치어'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그가 경찰이 아님을 알게되었죠. 그리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총알을 한가득 꺼내보였습니다.!

순간 올 것이 드디어 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곳은 대도시 퀘타에서 200km 이상 떨어진 곳이었고, 이란까지는 그보다 더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또한 북쪽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기에 공포심은 더했죠. 사막인데다 마침 그곳은 풀들과 검은 산들이 펼쳐진 곳이라 '사체'를 숨길만한 곳도 많은 곳이었죠.

여행이 끝났구나 생각했습니다. 아니 인생이 끝났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항상 카메라를 메고 다녔습니다. 조금은 비싸죠. '카메라로 찍는 척 하며 찍히면 강도가 아니고 관심을 보이며 뺏으려 한다면 카메라 버리고 도망이다!' 라고 생각하며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포토~ 포토~" 라고 하며 포즈를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찰~칵! 하고 찍었죠.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느낌을 아시나요?

그는 그곳의 불안한 치안때문에 자위의 차원에서 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무서워 했던 것을 그도 똑같이 무서워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리고 그는 저에게 웃어주기까지 했습니다.

사진을 찍고 난 후 인사를 하며 얼른 페달을 밟았죠.

 

수십키로를 더 달리고서 작은 마을을 만났습니다. 도로 난간에 앉아있는데 마을 아이들이 모이더군요. 얼마나 반갑던지!!

마을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그곳을 지나는 트럭을 타고 이란국경까지 갔죠. 휴~ 목숨을 걸고 여행할 이유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이란에서는 더욱 더 흥미로운 일이 있거든요??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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