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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순례길을 아시나요?

지구를 지켜라

by 채색 2009. 2. 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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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순례길을 아시나요?

안녕하세요? 자유채색입니다.

이번에는 여행기식으로 비교적 장문을 적고, 그 다음에 평소방식대로 사진에 설명을 달았습니다. 긴 글은 심심하실 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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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도봉산에 오른 적이 있다. 부산에 사는 나로써 서울의 산에 오른 적이 별로 없었으므로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찾아갔다. 일요일 아침, 도봉산 전철역의 수많은 얼굴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밝은 얼굴들. 일주일동안의 고생스러움은 이곳에 오면서부터 사라진 듯하다. 등산복과 가방, 지팡이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 방향으로 올라갔다. 기암이 아름다운 도봉산으로.

산 속에서 한번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인 듯하다. 좁은 등산로에서 병목현상이 생겨 기다리기가 일쑤였다. 올라가는 사람이 내려오는 사람을 기다리기도 하고 그 반대 현상도 많이 생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체의 형태로 온 듯 보인다. 큰바위의 주변에서는 식사와 함께 술한잔도 걸치는 모습들. 아마 온갖 스트레스가 다 쓸려내려갈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주변의 지형에 비해 등산로는 많이 달라보였다. 높이도 달랐고, 나무의 뿌리도 많이 드러나 있었다. 좁기 때문인지 좌우로 협로가 많이 나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니 길은 더더욱 망가져갈 것이었다. 귀가길에 도봉산 지하철역에 걸린 현판을 봤다. 아니나다를까 도봉산이 힘들어하니 방문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이다. 순간 부끄러운 마음이 인다.

‘서울성곽순례길’이라는 길이 있다고 한다. 북악산 - 인왕산 - 남산 - 낙산에 걸쳐있는 옛 서울의 성곽을 정비하여 천천히 걸으며 문화와 생태를 폭넓게 걸을 수 있도록 한 길이다. 내가 갔던 도봉산처럼 많은 산들이 수많은 사람들로 아파하기에 이런 길을 만들게 된 것.

사람들은 산을 찾으면 항상 정상에 올라야만 하고, 그 후에는 능선의 종주로 산들의 정수리를 밟고 다녀야만 성에 차는 듯하다. 나 부터가 그래왔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만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뚜렷이 대안이 없었고 지금까지의 방식이 그랬었기 때문에 그런것이다.

‘서울성곽순례길’은 아주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산이나 도봉산 등 서울의 주요산에 몰리는 시민들을 더 가까운 숲길로 인도하여 휴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순례길은 서울의 주요도심을 통과하며 오랜역사가 담겨져 있다. 특히나 북악산지역의 순례길은 오랫동안 군사보호지역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성곽의 보존상태가 굉장히 양호한 편이다.

아침조회가 끝나고 순례길을 찾았다. 우리가 시작한 곳은 녹색연합과 가까운 성북동의 입구이다. 혜화동 쪽으로는 성곽이 끊겨있지만 북악산 방향으로는 길게 이어져 있다. 기와 지붕을 가진 안내현판은 서울성곽에 관련된 여러 가지 정보들이 적혀져있다. 사적 10호라던가 조선태조 5년(1396)에 처음 축조되었다는 등의 사무적인 내용도 있고, 귀중한 문화유산이니 길이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특히나 눈길을 끄는 부분은 1396년에 20만명이라는 인원이 동원되어 건설되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여러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그런 인원이 필요했을 것 같았고, 조선을 막 건국한 시기라 국내의 반 세력들과 불안한 틈을 타 공격하려는 외국의 세력들도 견제하느라 급하게 만들어야 했을 것 같았다. 처음만들었을 때의 성벽은 다소 없어보이는, 돌로 대충쌓은 것 같은(그러나 쉽게 무너지지는 않게) 모습이 그 증거인 듯 보였다. 그러나 세종과 숙종의 시기로 넘어가면서 더더욱 단단히 만들어져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성곽은 일제의 수탈시대부터 망가지기 시작하여 해방후 개발시대에 많은 부분이 무너졌다고 한다. 문화재의 중요성이 부각이 되자 1975년부터 복구작업에 착수하여 현재까지 많은 부분이 복구되었고 온전한 모습을 되찾는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날씨는 생각보다 좋지않았다. 아침뉴스에서 오후부터 맑게 개인 하늘을 볼 수 있을거라 말했지만 걷는 오후내내 그것이 거짓말임을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나무가 없는, 간간히 트인 지역에서는 서울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높게 자라난 건물들의 실루엣이 보여 상상을 하는데 도움을 준다.

옅은 안개의 도시를 싸고있는 성곽은 생각보다 아주 컸다. 성체 위를 걸을 때는 잘 모르던 것이 성벽의 바깥으로 나갔을 때 거대한 위용을 드러낸다. 지나는 사람을 보니 그의 세배는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4~5m는 되는 듯. 성 안으로 침범을 하려던 사람들은 높은 사다리를 이용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에는 공격을 위한 시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여장’이다. 사실 지금까지 성곽의 그런 모양들은 왜 있는줄 몰랐다. 그저 모양을 위해? 아니면 바람을 잘 통하게 하기위한 시설일 것이라 예상했다.

원총안과 근총안이 있단다. 바로난 네모구멍은 멀리있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원총안이고, 바깥쪽이 바닥을 향해 쑥 꺼져있는 구멍은 가까운 적을 공격하기 위한 근총안이라고 한다. 총안, 총의 눈이라는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건설될 당시에는 총보다는 활이 많이 쓰였을 것 같다. 그렇다면 원궁안, 근궁안이라 붙여야 하지 않았을까.

초반 순례길 성벽에 누군가가 ‘레옹’이라는 낙서를 해 놓았다. 아이가 했을테지만 그의 행동이 다소 아쉬웠다. 그러다가 일종의 성벽건설 실명제로 새겨진 ‘각자’를 보게되었다. 오래전 성곽 건설당시 참여했던 책임자의 이름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듯. 그 사이에 황당한 글자가 있었으니 한글로 ‘정홍도’라고 자신의 이름을 비집어 넣어둔 것. 한글로 씌여진 것으로 보아 20세기 이후에 행한 것일 것 같았다. 당황스러움!

이 길은 뼈아픈 기억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이미 영화를 통해, 군대에서 들은바 있는 ‘김신조 사건’. ‘박정희의 목을 따기’위해 30여명의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이곳 청와대 뒷산까지 왔던 것이다. 같은 민족으로써 상대방의 최고 통치자 암살을 시도했던 그 사실이 어느편이 옳든 그르든 간에 참으로 부끄럽고도 아픈 일 아닌가. 그 때의 총격전의 증거가 이곳 소나무에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데 흰색 페인트로 칠 해 놓아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평화가 계속되어 그런 일이 없어져야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재발가능성이 아예 없어보이진 않는다.

백악마루를 정점으로 길은 내려간다. 완만하고 천천히 올라왔건만 백악마루는 아래편의 삭막함으로 빨리 내쫓는다. 왠지 내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가지않았는데 이번 코스의 끝을 알리는 창의문이 나왔다. 지금까지 ‘자하문’이라고 알고있었으나 원래이름은 창의문이라고 한다. 본래의 북문인 숙정문이 문으로써의 구실을 하지않았으므로 이곳 창의문이 북쪽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다고 한다. 자하문으로 불리게 된 것은 ‘자하가 많이 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자하는 ‘자줏빛 노을’이라는 뜻이다. 해는 이쪽보다 인왕산쪽으로 더 치우친 곳에서 수면아래로 들어가는 것으로 아는데 아마도 그 당시에는 서울 안에서 바라본 이쪽의 풍경이 그러했을것이라 짐작해볼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노을의 위치의 계절과 다를 수도 있겠다.

우리는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었지만 서울성곽순례길은 인왕산을 따라 계속되고 남산과 낙산을 돌아 다시 북악산으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길이가 총 18km정도 되기때문에 하루 종일 걸어도 될만큼이다. 그러나 순례길은 천천히 조금조금 돌아보며 그곳의 문화재나 도심을 즐기는 것이 훨씬 좋은 듯 하다. 서울을 알기위한, 알리기 위한 길로써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해 낼 것임에 분명해 보이고, 도심에서 지친 머리와 가슴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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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의 입구

입구가 많이 있습니다. 입구마다 이렇게 친절하게 안내표지판을 세워두었습니다.

 

 

약간 가파른 오르막이 있기도 하지만 못걸을만큼은 아닙니다. (반대편 자하문(창의문)쪽에서 이편으로 오는 길은 가파릅니다.)

 

 

군부대가 있어 길은 비켜나 있습니다.

이곳은 정부의 특수시설이 있는 곳으로 초특급 경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신발이 날아간다면 던지고픈 곳을 지키고 있지만... 어쨌든..^^

시설이 있는 곳은 성 밖으로 걸어가게 했거나, 아래사진처럼 높은 벽을 설치해두어 안이 보이지 않도록 해 놓았습니다.

 

 

도심속 성곽

맑은 날에는 서울시내가 깨끗하게 보인다고 하군요. 서울 시내를 이렇게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 그렇게 많지 않을겁니다.

 

 

다른 모양의 성벽

최초로 서울 성곽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초기에 지었습니다. 그 때는 급한 감이 있었기 때문에 보시다시피 가장 허접한 부분이 그 때의 성벽 되겠습니다. 메주만한 돌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습니다. 산성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세종때는 그에 비하여 좀 더 튼튼하게 쌓았습니다. 가장 아래사진의 왼편인데요. 아래쪽에는 넓게, 위쪽으로 갈 수록 좁게 쌓았습니다. 그래도 좀 성의가 없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숙종때에 와서 돌을 네모나게 정교히 깎아서 쌓았습니다. 가운데 사진 왼편과 가장 아래사진 오른편이 그 때의 성벽 되겠습니다. 중간중간에 'ㄴ'로 되어 있는 것들이 있는데요. 네모나게만 계속 맞추면 옆으로 쓰러지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서로 엇갈리게 해서 튼튼하게 만들었겠죠? 서양에는 'L자 공법' 같은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지은게... 새하얀 대리석 부분인데요. 1975년도부터 복원을 시작하면서 쌓은겁니다. 숙종때의 모양을 본뜬것 같구요, 너무 칼같이 딱딱 맞아떨어져서 유적이라는 느낌이 덜합니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하는건 안되겠죠?ㅋㅋ)아마 저것들도 세월이 지나면, 세월의 때가 묻으면 멋지게 변할겁니다.

 

 

안내판

길안내표지판, 나무이름표지판 등 여러가지의 안내표지판이 많이 설치되어있습니다. 길은 많지않아 잃어버릴 염려가 별로 없고, 나무나 풀 종류에 안내표시가 잘 되어있어서 학습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름을 알기보다 마음으로 느끼는게 더 중요하다는건 두말할 필요가 없죠.

 

 

신분확인과 안내서

말바위 쉼터라는 곳에 도착하면 신분증을 제시하고 패찰을 받아가야 합니다. 신발을 던지고 싶은 곳이지만 그곳을 보호하기 위해서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으므로 어쩔 수 없습니다. 물론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간단한 확인절차 후에 패찰을 줍니다.

안내서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지금보니 중국어 표기가 잘못되어 있군요. 간체자로 적어야 할텐데...) 매우 간단하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올해 3월 경에 녹색연합에서 아주 멋진 안내서가 배포될 예정입니다. 3월 이후에 만나보실 수 있으니 그 때는 더욱 더 즐거운 산책을 즐길 수 있습니다.

 

 

숙정문

북대문 격인 숙정문입니다. 이 문은 통행을 하려고 낸 문이 아니라 동서남북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문이라고 합니다. 과거에도 이 문은 줄곧 닫혀있었으며 음기가 강하기 때문에 비가 안올 때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답니다. (그 때는 양기가 강한 남대문은 닫았다고 하는군요.)

 

 

낙서

아이들의 낙서일 것 같으나 '레옹'이라 함은... 과거 영화의 제목이었으므로 꼭 아이가 했다고 장담도 못할 듯 합니다. 제발 이런 짓좀 하지 맙시다. -.-;;

 

 

건축 실명제

성곽 책임제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곽을 다 지은 후에 건축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소수 적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아래사진을 보면... 정홍도.. 라고 한글로 적어놓은 것이 보이죠?? 누가 그랬을까... 위에 락카로 한 것은 수세미 같은걸로 지울 수도 있지만 이건 아예 파버려놔서 그럴 수도 없겠군요.

 

 

화살 또는 총구멍(여장, 성가퀴)

성곽 윗부분을 차지하는 여장(성가퀴)입니다. 총안이라고 하는데요, 銃眼이겠죠? 적들이 다가올 때 안전하게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구멍입니다. 가장 아래의 사진은 '원총안'이라고 합니다. 멀리있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죠. 가장 아래에서 위로 두번째 사진은 근총안이라고 성벽 아래까지 근접한 적을 공격하기 위한 것입니다. '근총안'이라고 합니다. 두번째 사진을 보면 확실히 아시겠죠??

 

 

김신조 일당과의 교전 흔적

1968년 1월 21일에 발생했던 이곳에서의 총격전의 흔적입니다. 위 장문에서 설명했듯 아주 아픈 흔적이죠.

 

 

북악산(백악산) 정상

몇년전에 올라왔을 때는 경복궁과 세종로가 훤히 보였었는데 이번에는 나무에 가려져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몇년전에는 일반인 접근 금지였지만 근처부대에서 근무했기에 올라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내려가는 길

자하문(창의문) 쪽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반대편과는 반대로 매우 가파랐습니다. 되도록이면 반대편에서부터 올라오길 권해드립니다. ^^

 

 

자하문과 끊어진 성곽

자하문이 있고, 그 옆으로 도로 때문에 성곽이 끊겨버렸습니다. 하지만 길은 저 도로만 건너면 인왕산을 넘어가는 길로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성북동 - 자하문 코스만 다녀왔습니다. 다음번에는 천천히 인왕산 코스도 가보고, 낙산코스도 가볼 생각입니다. 서울에 살면서 (부산에서 옮겨왔습니다. -.-;;) 이렇게 좋은 자연탐방로가 있다는게 정말 좋네요. 여러분도 도심이 갑갑스러울 때 길을 찾아가보시기 바랍니다.

 

이상 자유채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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