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청와대 앞 자전거도로는 청와대 액세서리?

세상살이

by 채색 2010. 8. 2. 07:50

본문



몇일전 간만에 자전거를 타고 볼일을 보러갔습니다. 동선은 대학로에서 인왕산까지였죠. 가는 도중에는 약간의 자전거 도로가 있습니다. 전에 제가 썼던 글처럼 오토바이나 버스가 마구 들어오는 매우 위험한 자전거 도로지요. 이 도로는 작년부터 생겼었는데 사실 이 도로가 어디서 어디로 이어지는지 제대로 인지하고 탄 적이 없습니다. 그냥 나오면 나오나보다... 없어지면 없어지나보다.. 했었습니다. 자전거 도로로써 효용성이 없기 때문에 더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길로 가다가 갑작스레 밀고들어오는 오토바이에 놀라고, 버스에 놀라서 도대체 이 자전거 도로의 정체가 뭔가 싶어서 끝까지 가보기로 했습니다. 괜한 심술이 나기도 했고, 특히나 자전거 도로로써의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더욱 더 그랬습니다.

자전거 도로의 시작은 풍문여고 앞에서 시작됩니다. 동십자각 사거리에서 삼청동쪽으로 빠지는 자전거 도로가 나오고 가던 길은 광화문 앞쪽으로 쭉 이어집니다. 일단 광화문 방면으로 직진했습니다. 경복궁을 다 지나고 적선동으로 접어들려는 순간 자전거 도로는 끊겨버렸습니다. 인도 위의 기둥에 자전거 모양에 사선을 긋고 '해제'라는 글자가 적혀져 있었습니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끝나버려 너무나 허무했습니다. 지금까지 인왕산 쪽으로는 몇번 들어가본 탓에 그쪽에는 자전거 도로가 없는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 길이 사직동 쪽으로 이어질 줄 알았지 여기서 끝날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길을 건너갔습니다. 헉~ 그런데 건너편에는 자전거 도로가 전혀 없었습니다. 분명 광화문 앞길의 자전거 도로는 사직동 방면으로 일방통행이었거든요. 사직동 방면에서 인사동 방향으로 가는 자전거 도로는 없던 겁니다. 어떻게 가는 길만 있고 오는 길은 안 만들어 놓을 수가 있는지! 

동십자각에서 삼청동 방향으로 가는 길을 기대했습니다. 삼청동 안쪽으로 길이 나 있거나 청와대 앞으로 길이 나 있거나.. 상상했습니다. 다행이게도 삼청동으로 가는 길은 왕복차선이었습니다. 이편에도 있고 반대 차선에도 자전거 도로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구나 생각하며 쭉~ 쭉~ 올라갔는데... 헉..

삼청동 입구에 도착하니 횡단보도 바로 전에 또 '해제'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충격이었죠.

자전거 도로는 청와대 안쪽으로 계속 이어졌는데 왠지 부담스러워 몇번이나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입구의 경찰 검문이 상당히 부담이었죠. 특히 '뻗치기' 하고 있는 의경들이 정말 부담이었습니다. 몇년 전만해도 청와대와 맞붙은 길로는 차량을 제외한 자전거나 도보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제한돼 있었거든요.

자전거 도로가 있으니 한번 가보자 해서... 갔더니 그냥 보내줬습니다. 어?? 정말 자전거 도로가 쭉 이어져 있나보네.. 하고 진짜 검문소를 통과하는데 '어디가십니까?' 라고 묻길래 '그냥 지나가는 건데요..' 라고 하니 보내줬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통행방법과 달라져 좀 놀라고 있는데... 자전거 도로는 검문소를 지나 곧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게 참 웃긴게 삼청동 입구에서는 청와대 앞길로 쭉 이어져 있는 듯 보이는데 막상 가보니 약간 굽은길을 도니 끝나버렸습니다. 일종의 눈속임이었죠. -.-



| 풍문여고 앞에서 적선교차로까지 0.8km 편도차선
| 동십자각에서 청와대 입구까지 0.8km 왕복차선




| 이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 전용이라고 표시되어 있음에도 버스, 오토바이, 승용차, 택시 등 모든 종류의 차량들이 함께 달립니다.




| 적선 교차로 앞에서 끊어진 자전거 도로. 어디로 가란 말인지??



| 경복궁 옆 삼청동으로 가는 길. 차량이 우회전 해야하는 곳에 차량운전자에게 자전거를 주의하라는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정도로 꼼꼼하게 잘 해놨다..라고 생각할 즈음..



| 삼청동으로 들어가는 길 앞에서 끊어졌습니다. 신호기 기둥에 '해제'라는 표지판 보이시죠?




| 풍문여고 앞에서 시작되는 자전거 도로입니다.



| 청와대 입니다. 자전거 도로는 이곳을 위한 액세서리가 분명한 듯 했습니다.


이 길을 달리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보니 청와대와 인접한 지역에만 이렇게 해 놓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자전거 이용자를 위해 설치했다기 보다는 이곳을 방문하는 수많은 관광객들, 귀빈들을 위해 설치한 단지 보여주기 위한 자전거 도로가 아닌가 했습니다. 다시말해 청와대 액세서리인 것이죠.

왜냐하면 이 자전거 도로는 전혀 효용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전거 도로로써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전거를 위한 길이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안전을 위협하는 다른 차량들이 무지막지하게 들어오고, 1km 도 못가 끊어지기 때문에 안만들어 놓은 것보다 못하기 때문입니다.

도로를 달리는 일반 자전거 운전자라면 그냥 차량들이 달리는 도로에서도 비교적 잘 달립니다. 방향을 틀거나 차선을 바꾸거나 추월을 해야할 경우에는 주위를 살피고 수신호를 하는 등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속도도 비교적 빠릅니다. 하지만 어린 학생이라든지 여성 운전자,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이들을 위해서라면 안전한 자전거 도로는 필수이지요. 그런데 이런 짧은 자전거 도로라면.. 집에서 이곳까지 오지도 못하고 올 이유도 없습니다. 이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지요. 이곳까지 올 수 있는, 잘 타는 사람들에겐 있으나 없으나 한 도로라는 말입니다.

자전거는 이동수단으로 가치가 높습니다. 아직까지는 자전거를 '레져'의 수단, 여가를 즐기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래서 무개념의 자전거 도로가 넘쳐나지요. 안전한 자전거 도로가 확보된다면 누구라도 자전거 만으로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건강도 좋아지고(매연 때문에 일부 나빠지고..-.-),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습니다. 자전거 도로 정책을 잘만 펼친다면, 그 정책 입안자는 수많은 시민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을거라 확신합니다. (4대강변에 만드는 자전거 도로 제외!!)

액세서리가 아닌 진짜 이동을 위한, 자전거를 위한 도로를 만들어 주십시오.

추천 버튼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