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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돈을 빌려줬습니다.

세상살이

by 채색 2008. 12. 2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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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유채색입니다.

서울역에는 정말 자주 가는 편입니다. 부산에서 살고 있지만 많은 일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까 한달에 두번씩 갈 때도 있고, 한달에 한번은 보통 가게 되네요. 인천에 누나가 살고 있어서 그곳을 거점으로 활동을 하기는 하지만 서울에서 거리가 멀어서 그렇게 편한 자리는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무궁화호를 타고 5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서울역은 언제나 답답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이 날도 여느때처럼 다섯시간이 걸려 올라왔습니다. 'The bike'라고 하는 자전거 잡지와 인터뷰가 잡혀져 있었습니다. 제가 여행한 여행에 대해 인터뷰 하는 것이었죠. 배가 고프면 떨리기 때문에 2층 식당코너에서 '짜'장면을 한그릇 후딱하고 약속장소로 향했습니다.

 

서울역을 나서는 저에게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헐떡거리며 뛰어 왔습니다.

아저씨 - 혹시 장거리 택시 타는 곳이 여기말고 어딘지 아세요?

나 - 잘 모르겠는데요.

아저씨 - 택시타고 집에 가야 하는데 밤에만 간다고 그러네.

나 - ... (그래서??)

아저씨 - 버스 터미날하고 서울역에 왔는데 아무도 안간다고 그러네요. 혹시 여기말고 어디 다른데 없어요?

나 - 서울에 버스 터미날이 여러개 있어요.

아저씨 - 아... 우짜지... 제가 지갑을 잃어버렸거든요. 부산에서 왔는데 소매치기 당했어요. 버스나 기차를 탈라꼬 하니까 돈이 없고 택시 타고 가서 돈을 주려고 하는데, 이거 돈이 하나도 없네.

나 - 경찰서에 가보셨나요?

아저씨 - 가서 분실신고하고 했지요. (분실증?같은 것을 꺼내보입니다.)

나 - 얘기하면 차표같은거 끊어줄텐데요??

아저씨 - 요새는 안그런다고 그라고, 돈 빌려달라꼬 해도 안주네요.

나 - 아.. 그래요??

 

분위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버렸습니다. 역시나 돈을 빌려달라는 눈치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예전에 이런 경험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려는 사람에게 기차표를 끊어준 적이 있고, 서울에서 진주에 가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예상하듯 그들로 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고, 돈을 돌려받지도 못했습니다. 빌려줄 때는 당연히 돌려받을 것을 예상하고 또 그들도 장담했습니다.

여행을 다니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게 됩니다. 십여년 전에 첫번째 모험적인 도보여행에서 특히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말도 하지않았지만 도와주려고 노력을 하고 심지어는 금전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밥이나 잠 같은 것은 기본제공 같은 것이었죠. 세상에 아직도 이렇게 착한?? 분들이 계시구나 하며 충격적인 감동을 받았습니다.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을 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힘들어 하는 나에게 다가와서 도와줄 것이 없나 살펴보고 물어주었습니다. 대부분 혼자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라 거절을 하긴했지만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도움이 필요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 때는 도움이 없으면 망연자실해야 할 때가 있었던 것이죠.

파키스탄을 여행할 때 굉장히 더운 날이었습니다. 그늘에 있는 온도계가 섭씨 52도까지 치솟을 때였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만나는 주유소가 흔히 쉼터가 되었습니다. 더위로 인해 인사불성이 되어 주유소 그늘에 들어가자마자 뻗어버리기가 일쑤였죠. 보통때는 쉬어가도 되냐고 묻고 음료라도 하나 사먹었는데 그날은 그런 것도 하지 못할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곳 주인아저씨는 저의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시~~원한 콜라 하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시원한 콜라맛이 아직도 목구멍에 남아있습니다.

여행에서 받은 도움은 되돌려주기가 참으로 껄끄럽습니다. 큰 도움을 받아서 주소나 교환하고 비교적 친한 사이가 되었다면 모를까 그냥 지나가며 도움을 받았다면 거의 돌려주기란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만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도움을 준 그 사람에게 꼭 집어 돌려줄 수 없다면 도움이 필요한 주변의 사람에게 주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갈 때도 자전거가 고장나거나 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이 지나가면 할 수 있는 데까지 도와주고 했던 것입니다. 또한 차비를 준 것도 마찬가지 이유겠지요. 물론 그것은 몇만원이라는 '하루일당'에 속하는 돈이라 돌려받았으면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제가 이런 원칙을 세우고 도와주려고 해도 3~5만원이나 되는 돈은 쉽게 줄 수 없는 돈이죠. 이런 돈을 몇번씩이나 주게된 계기가 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두명의 친구들과 함께 전국 무전여행을 했었는데요. 마지막 코스가 지리산 천왕봉이었고, 중산리로 하산했었습니다. 계획으로는 히치를 통해 집으로 가는 것이었죠. 그래서 히치를 하려고 지나가던 교회 봉고를 세웠는데 그것을 타고 있던 목사님이 그만 차비조로 3만원 가량을 우리들에게 줬던 것입니다. 그 옆에 계시던 사모님?은 참으로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극구 반대하셨지만 목사님은 주저없이 준 것이죠. 당연히 돌려받으려고 하지않았습니다. 참으로 고마웠죠.

 

아저씨 - 어디서 오셨어요?

나 - 부산에서 왔어요.

아저씨 - 아?? 부산요?? 저도 부산에서 왔어요. 부산 어디에요??

나 - 덕천동이에요.

아저씨 - 아~ 거기 구포 옆에 아닙니꺼..

나 - 맞아요.

아저씨 - 좀 도와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나이 사십에 이런말하기 정말 부끄러운데 방법이 없습니다.

나 - 아... 그렇군요...

 

요즘에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버스 터미날이나 기차 역에서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빌려줬던 적이 두번 있지만 거절했던 적은 더 많습니다. 왜냐하면 외모로 보아 빌리지 않더라도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죠.

이 아저씨는 정말로 평범한 외모에 보통의 아저씨였습니다. 희한하게도 가방도 없고 지갑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죠. 가방을 통채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집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까 잠깐 고민해보다가, 사정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그만 지갑에 손이 갔습니다.

 

나 - 아저씨 제가 돈이 많지 않은 사람이거든요. 빌려드리는거니까 꼭 돌려주세요.

아저씨 - 당연하죠. 제가 꼭 보답할께요. 꼭이요.

 

그러면서 저는 아저씨께 돈 3만원을 드렸습니다. 계좌번호와 전화번호를 적어줬습니다.

고맙다는 말과함께 가려고 하는 아저씨를 불러 연락처와 전화번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서울역에서 타고 가면 될거라고 말해 줬는데 아저씬 버스를 타야한다면서 지하철 역으로 향했습니다.

아저씨는 무슨 나쁜짓이라도 한 듯 정신없이 등을 보이며 뛰어갔습니다. 그제서야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4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어느 부족에서는 선물을 받으면 준 당사자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준다고 합니다. 그렇게 돌다보면 결국엔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이죠.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믿는 것이죠. 아니 그런 믿음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저 주고싶어서 줄 뿐이지 다시 받을 것을 기대하지(아예 생각하지) 않을 것 같네요.

하지만 거짓말은 분명히 나쁩니다. 양치기 소년이 정작 도움이 필요했을 때 도움받지 못했던 것처럼, 거짓말을 하다가는 진짜로 도움이 필요할 때는 등을 돌릴겁니다.

아저씨, 집에는 잘 들어가셨나요?

 

이상 자유채색이었습니다.

ps. 아래 링크된 책이 제가 첫번째로 쓴 책입니다.^^ 유라시아 여행한 이야기가 한가득 들어있죠. 따뜻한 관심 부탁드립니다.

ps2. "2008 올해의 청소년도서" 로 선정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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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채색의 여행갤러리
http://www.thejourne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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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는 유라시아, 꿈길처럼 달린 432일!
한국 청년, 두 바퀴 자전거로 열두 나라를 가슴 벅차게 달리다.


유라시아 자전거 횡단 여행기. 세상을 향한 동경으로, 넓은 세상에는 미처 알지 못한 그 무엇인가가 더 많은 것이라고 생각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그 무엇'에 대한 동경 하나 만으로, 만 1년 2개월에 걸친 유라시아 대장정에 나섰다. 이 여행기는 2001년부터 준비했던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시작해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유럽과 러시아를 횡단했던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은 2006년 6월에 시작되어 2007년 9월에 끝났다. 때로는 걷고, 때로는 달리면서 만났던 따뜻한 심성의 사람들, 결코 잊을 수 없는 인연들, 추억들을 글과 그림으로 그대로 남겼다.

특히, 유라시아 대륙의 장대한 풍경을 사진으로 옮겨 담았다. 중국의 대도시들, 티베트ㆍ네팔의 주옥같은 절경, 프랑스ㆍ스페인ㆍ포르투갈의 숨겨진 길과 유적지 등 현지의 생생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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