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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는 개발의 혜택으로 자연은 사라지고 있다.

도시를 떠나는 꿈

by 채색 2012. 12. 28.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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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명해변에서 하루를 보냈다. 철로가 1차선 도로 하나를 두고 지나가는 신기한 곳이었다. 그곳을 출발해 걷자마자 도착한 곳은 유명한 정동진이다. 속초와 가까운 낙산해수욕장이나 강릉 시내에 있는 경포대 해수욕장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닐고 있었다. 드라마에 나온 이후로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뒤 아직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는 것 같다.


첫 번째 휴식을 하려 백사장 안쪽의 벤치에 앉았다. 오르막 오르듯 그곳에 올랐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살펴보니 콘크리트로 만든 휴식시설 끝이 떠있는 듯한 모양새였는데, 아래쪽 모래가 많이 빠져나가 있었다. 게다가 보도블록으로 만든 인도는 반쪽만 남고 나머지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유실이 된 상태였다.


전국적으로 해변 침식이 심하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눈으로 확인하긴 처음이다. 침식 원인을 무어라 단정 짓긴 어렵겠지만, 건설한 지 1년도 채 안되어 보이는 시설이 망가졌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런 해변침식은 해안 가까이 건설된 인공물들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방파제나 해안 고층건물과 도로가 모래의 이동을 방해하는 것이 첫 번째 큰 원인이라면, 크고 작은 강 곳곳에 건설된 댐이나 보가 직접적으로 모래유입을 막은 것은 두 번째 큰 원인이고, 그리고 기후변화로 크고 강한 태풍이 자주 몰아쳐 침식이 심해진 것도 또 하나의 원인이라고 한다. 


정부는 2003년부터 연안침식 모니터링을 통해 대책마련을 하고 있다지만, 2012년의 정동진 해변을 봤을 때 썩 그리 효과를 보는 것 같진 않았다. 구글로 검색된, 정부의 용역을 받아 실시한 어느 한 업체의 해안침식대책 관련 문서에는 도로철거나 건축물 규제, 모래흐름이 가능한 보 설계 등 근본적인 대책은 하나 없고, ‘침식방지시설’을 설치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새로 쌓은 담벼락 아래쪽으로 콘크리트 시설이 '뚝' 잘려나가 있다.


백사장으로 내려서는 보도시설물이 끊어져 있다. 백사장의 모래가 빠져나가면서 벌어진 현상으로 보인다.


보도블럭 등 보도시설이 쓸려나가고 없다.



암이 걸리면 암을 유발한 식품을 먹지 않으면 될 것을 수술과 인공약품을 통해서 없애려 하는 것과 똑같았다. 분명히 그 ‘식품’의 유해성을 알면서도 ‘식품산업’유지? 와 ‘의약품산업’유지?를 위해 나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면 역효과를 막을 산업을 키울 수 있어서 환영할 지도 모르겠다.


해안을 보호하는 천혜의 방파제, 모래는 인간의 욕심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멋진 풍경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 때문에 개발이 진행되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 상업시설이 들어차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그들 때문에 모래는 사라지고, 그 후엔 어떻게 될까? 


정동진을 벗어나 접어든 작은 길 곳곳에는 작은 꽃들이 살랑거리고 있었다. 내가 아는 건 샛노랑의 민들레와 개나리 밖에 없었지만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누가 심지 않아도 이렇게 잘 살아가는 꽃들을 보니 새삼 웃음이 나왔다. 사람들은 뭐든지 통제하고 조종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작은 꽃들, 자연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또 다른 주변 자연물과의 조화를 통해 살아가는 것일 뿐.


심곡리에서 출발해 금진리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유난히 드라이브를 즐기는 차들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반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도로’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1998년도에 바다를 메우고 생겨난 도로이니 가깝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다만, 옥 같은 빛을 내는 투명한 바닷물을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잠시라도 내려 바다를 구경하면 좋으련만 다들 윙~하고 지나쳐버렸다.



심곡 해변도로에서는 도로 바로 옆으로 기암괴석들을 볼 수 있다.


때로는 검은돌이, 대로는 황금빛을 내는 바위도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모래사장이 나왔다. 사람이라고는 미역 건지는 사람 몇 명뿐이었다. 왠지 해변 끝에 있는 거대한 깡통같이 생긴 시멘트 공장 때문이 아닐까하고 억지 이유를 대 보았다. 당연히 꼭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 공장은 위치상 자병산에서 채굴한 석회석을 가공하는 공장 같았고, 카메라로 확대해본 결과 역시나 그랬다. ‘자병산’이 저곳에서 가공되어 우리나라 건설현장은 물론 세계 곳곳으로 실려 나간다. 백두대간 허리가 여러 곳곳에서 단단히 버티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계곡을 막아 댐이 되기도 하겠지.


걸으면 걸을수록 공장은 더 커졌다. 자병산에서 받은 충격 때문인지 시선은 줄 곧 공장을 향해 있었다. 내 딴에는 조금이라도 더 분노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 엑스맨의 사이클롭스처럼 눈에서 레이저를 쏠 수 있다면 부담 없이 선글라스를 벗고 있었을지도. 물론 현실에선 가능하지도 않고, 실현할 수도 없다. 상상 속에서만 객기를 부렸다.


그런데 공장이 더 가까워졌을 때, 낙풍천을 건너가야 하는 다리 앞에서 망연자실해야만 했다. 다리 건너 안쪽에는 대형 공사장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공사장이 있는 자리를 가로질러 망상해수욕장 방면으로 가야했다. 이 길이 아니라면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공사장 입구에는 ‘포스코 마그네슘 제련사업’이라는 글자가 붙어있었다. 즉 마그네슘 제철소를 건설하고 있다는 뜻. 순간 ‘마그네슘은 또 어디서 캐나, 산들이 신음하겠구나!‘싶었다. 우리나라 금속 자급률이 1%내외라는 뉴스보도가 떠올랐다. 그 때문에 그간 폐광되었던 금속광산을 다시 개발할 예정이라고. 이 현장은 ‘우리나라 금속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생생한 현장인 셈이다.


대체 99%의 금속은 어느 산을 뚫고 깎아 가지고 온 것일까. 분명 지구 어딘가는 단단히 신음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순간 내 손에 들린 묵직한 금속덩어리, 카메라가 미워졌다. 이를 꽉 깨물었다 풀었다. 다른 부분에서 최대한 아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다행히 멀지않게 돌아가는 길이 있었다. 그 길에서는 시멘트 공장이 더욱 더 뚜렷이 보였다. 공장에서 들리는 것인지 공사장에서 들리는 것인지, 여하튼 그 일대는 중저음의 소음이 짙게 깔려있었다.


한참을 돌아 만나게 된 주수천에는 자병산에서 이어져 온 것이 분명한 ‘석회석 이동통로’가 있었다. 작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까부터 들렸던 중저음의 소음 일부가 거기서 나왔다. 그렇게 자병산의 뼈대, 백두대간의 허리는 공장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레이저를 쏜다느니 분노를 표한다느니 생각을 했었지만, 막상 가까이 와보니 고개가 숙여졌다. 나 스스로 그런 욕을 할 만한 자격이 있나 싶어서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생활공간이 콘크리트가 아니었던 적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금진해변에서 바라본 한라라파즈 시멘트 공장.


자병산에서 채굴한 석회암석을 길고 긴 통로를 통해 바닷가까지 운반하고 원통형 공장에서 화학처리를 거친 뒤 우리에게 '친숙한' 시멘트로 만든다.


시멘트 공장에서 '자연'을 노래하는 광고를 실어놓았다. 아이러니다.



사실 ‘환경’이 파괴되는 현장에서 소리 높여 싸울 때 상대편이 불리할 때 나오는 문장도 “당신은 콘크리트 집에 안살아?”였다. 환경활동가로써 나름대로 적게 사고, 적게 쓰면서 ‘덜 임팩트’하게 살아왔다. 화장실 휴지를 쓰지 않은 건 벌써 5년도 넘었고, 비누나 샴푸 등의 세재를 쓰지 않은 건 일 년도 더 지난 일이다. 손수건이나 휴대용 컵 정도는 필수품이 된지 오래다. 차츰 차츰 줄여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질문에 주눅들 수밖에 없었던 건 콘크리트를 떠난 삶을 생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온 나라 사람들이 나무로만 집을 짓는다면 숲이 사라질 것이 뻔했고, 우리나라 특성상 돌 집 재료는 구하기 힘들지 않나. 도시의 삶은 콘크리트와 뗄레야 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 고해서 잘못된 것을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분명 이 콘크리트는 ‘어머니 대지’를 파괴해 얻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다른 무언가, ‘지속 가능한’ 집 재료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땅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으로 쉽게 돌아갈 수 있는 나무나 흙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옛 사람들이 그렇게 했듯 말이다. 


시멘트 공장 옆에는 거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림은 초록색으로 산을, 옅은 갈색으로 해변을, 파랑색으로 바다를 표현해 놓았다. 바다엔 요트가 두 대 그려져 있다. 그 속엔 큰 글자로  짧은 문장도 적어놓았는데 ‘쪽빛 바다와 푸른 마음이 있는 옥계’였다. 아마도 이 공장이, 자병산 광산이 들어서기 전에 그러했다는 걸 표현한 것 같다. 그림 속엔 산을 깎은 모습도, 공장도 그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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