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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케냐 사진의 배경이 된 그곳, 지금은...

도시를 떠나는 꿈

by 채색 2013. 1. 12.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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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방에서 임원까지 30여km 정도는 대체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한참을 걸어가던 중에 시내버스를 몰던 기사님이 “태워드릴게요! 타세요~”라며 적극적으로 우릴 태웠기 때문이다. 해안 절벽이 발달한 지역이라서 길은 내륙 쪽으로 늘 들어와 있었고, 빠른 차량들을 피해 다녀야 하는 곳이어서 사절하지 않았다.


임원에서 또 하루를 보내고 열심히 걸었다. 이젠 익숙해진 바다는 눈에 들어오지 않은 대신, 낯선 숲이 보였다. 2000년 초반에 일어난 산불의 흔적이었다. 잘 자란 소나무의 나이를 가늠해보니 역시나 10년 내외였다. 어떤 곳은 조림한 곳도 있었고, 어떤 곳은 풀만 무성한 곳도 있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다시 울창한 숲으로 변할 것이다.


새로 태어나는 숲에 정신을 팔았더니 어느새 원덕읍에 도착했다. 읍내 끝에서부터 울긋불긋한 현수막이 거리를 장식하고 있었는데, 분홍빛 가로수들조차 명함을 못 내밀 정도로 화려했다. 10~20m 간격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의무고용 약속 이행 않는 1군 업체는 공사를 중단하라’, ‘가스공사는 원덕읍 전 지역에 무상으로 가스를 공급하라’, ‘국책사업 1군 업체 직원은 원덕읍에 거주하라’, ‘빨래도 널지 못하는 곳이 사람 사는 곳이냐’, ‘평생 동안 가스폭발 위험 당장 공사를 중단하라’ 같은 것들이었다.


이 지역 일대에 ‘남부발전’이라는 업체에서는 발전소를 짓고 있고, 가스공사에서는 LNG기지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현수막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는데 흔히 ‘반대하는 사람들’의 스타일과는 좀 달랐기 때문이다. 



작년 봄 원덕읍에는 이같은 현수막이 촘촘히 걸려 있었다.


'당장 중단'이라는 구호가 적혀있는 곳도 있었고,


보상을 하라거나 가스와 전기를 무상으로 공급하라는 내용도 있었다.



공사 중단을 요구하면서도 직원은 읍에 거주하라고 하는 것이나 무상으로 전기와 가스를 공급하라는 것이 이상했다.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는 것이라면 꾸준한 반대를 해야 하는 것임에도 한 편에서는 완공을 가정하여 ‘무상전기’, ‘무상가스’를 요구하는 것이다. 게다가 현수막의 디자인 컨셉이 다 같았다. 현수막 아래의 ‘~~일동’만 다를 뿐이었다. 


읍내 중심에는 몇몇 ‘청년’들이 새로운 현수막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이 이 ‘반대운동’의 핵심임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도 이 외딴 곳에 대형발전소와 가스기지가 들어서는 것은 반대여서 “안내자료 같은 게 혹시 있을까요?”하고 물었다. 발전소나 가스기지로 인한 환경피해 같은 게 궁금했다.


한 분이 임시로 지어진 천막 안을 뒤져보더니 “아쉽네요.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다 치워놨어요.”라고 대답했다. 어떤 피해가 있는지, 공사는 얼마큼 됐는지, 왜 반대를 하는지 물었다. 하지만 공사가 대부분 진행됐다는 사실 외에는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곤 천막 옆에 붙여놓은 ‘우리의 요구사항’을 가리키며 “이게 우리가 요구하는 것들이에요”라고 알려주었다.


‘요구사항’은 현수막에 적혀져 있는 것들과 일치했다. 가스공사와 남부발전에 각각 1200억과 600억을 요구하고, 전기와 가스를 무상으로 공급하라는 내용이었다. 장학재단 설립과 지원법도 제정하라고 되어 있었다. 이런 활동은 3~4개월 전부터 했다고.


주민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진행됐냐는 물음에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떤 상황인지 대강 그려졌다. 대형 국책사업이 벌어지는 곳이 다들 그렇듯, 건설 계획 단계에서는 온갖 감언이설로 주민들의 동의를 얻은 뒤, 실제로 공사가 진행될 때에는 약속했던 것들을 지키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뿔난 주민들은 약속했던 것보다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원덕읍에 건설하고 있는 LNG기지



밥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명한 사진작가가 솔섬을 찍었었는데 그것 때문에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아 찾아온다는 것이다. 솔섬은 그곳과 가까운 가곡천에 있다고 했다. “저는 어릴 적부터 거길 봤었는데, 그렇게 예쁜 데가 아닌데……. 사진을 보니 신기하데요.”


직감으로 식당 주인이 말하는 사진작가가 바로 마이클 케냐인 것을 알았다. 그 ‘솔섬’사진은 사진잡지 등을 통해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었다. 사진 중앙에 소나무가 빼곡하고, 아래로는 고요한 물이, 위로는 구름 낀 하늘이 멋진 사진이었다. ‘여기가 바로 거기라니!’ 식당주인이 말을 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솔섬을 없애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하도 반대해서 남겨둔다고 하대요.” 아직도 있다는 얘기였다.


밥을 다 먹고 그 방향으로 향했다. 솔섬은 우리가 가는 길옆에 있었던 것이다. 공사장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크고 작은 크레인이 가득했다. 대형트럭들도 계속 드나들고 있었다. 형태를 잡아가는 가스저장탱크는 핵발전소 보다 더 그럴싸했다. 공사장 때문에 가는 길이 막혀 돌아갔다. “예전 도보여행 했을 땐, 저기 호산해수욕장에서 하루 잤었는데…….” 유하에게 이곳이 예전엔 조용한 해변이었단 걸 알려주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사진 배경’에 도착했다. 솔섬은 사진에 찍힌 그대로 그곳에 있었으나 그 뒤로는 타워크레인들이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무엇인가 열심히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꼭 그 모습이 꼭두각시 인형을 줄에 매달고 공연하는 광대 같았다. 자연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조정하려는 듯.


그 옆 방파제에선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즐겁게 낚시를 했고, 주민들은 ‘자연산 미역’을 건지고 있었다. 하나같이 다 즐거운데 ‘저런 것’ 때문에 힘들어야 하는 게 싫기도 했다. 뭐든 신경 안 쓰고 살면 좋으련만, 아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세상이 오면 좋으련만. 



사진가 마이클 케냐의 사진 배경이 된 소나무와 바다


사진기를 살짝만 돌리면 LNG기지 건설현장이 보인다. 마이클 케냐의 사진에서 보던 고즈넉함은 온데 간데 없다.


소나무 뒤로 보이는 타워크레인. 흡사 인간이 자연을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려는 모양같다.


LNG기지 건설현장 뒤로는 광대한 절개지가 보인다. 대형발전소 건설 예정부지인 듯 하다.


강과 바다가 만나며 만들어진 아름다운 해변. 7번 국도를 따라 혼자 도보여행을 했던 15년 전, 이곳에서 야영을 했었다. 그 때 이곳에서 우리나라의 자연에 찬사를 보냈건만!



아래는 마이클 케냐의 사진, 이제는 정확한 구도로만 사진을 찍어야 이쁘게 나온다.




마이클 케냐 사진 출처 : http://www.michaelkenn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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