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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첩이라구요?

도시를 떠나는 꿈

by 채색 2012. 12. 2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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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일은 참 모르는 일이다. 쫓기듯 해변을 빠져나와 민박을 잡고 나니 나현씨에게 특별한 문자가 와 있었던 것이다. “주문진과 망상 사이에 아빠가 쓰는 빈 집이 있거든. 거기서 며칠 쉬면 좋을 텐데…….” 알고 보니 그녀가 말하는 그 ‘빈 집’이 바로 그 동네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비어있는 상태.


‘올레’를 외쳤지만 민박집이 이미 우리 짐으로 어질러졌기 때문에 다음날 그곳으로 향했다. 다시 추워진 날씨가 잠잠해질 때까지 머무르는 것으로 정했다. 하지만 곧 국회의원 투표일이 있었으므로 투표일까지 더 쉬는 것으로 했다. 그것도 다시 바뀌어 ‘빈 집’에서 삼일,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4일을 더 머물기로 했다. 아예 투표까지 하고 오는 것이다. 그 쯤 되면 추위는 멀리 가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일주일동안 계절이 변했다. 물론 내 고향 부산은 이미 벚꽃이 만발해 봄이 번진 상태였다. 돌아온 여행길 강릉에는, 꾸역꾸역 봄이 차오르고 있었다. 언제 벚꽃은 봉우리를 맺고 만개를 했을까. 잊었던 폭죽을 급히 꺼내 터트린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 짧은 찰나를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자연의 변화를 세심히 관찰할 수 있는 게 도보여행자의 특권이건만.


투표를 위해 잠시 떠나?있는 일주일동안 봄은 훌쩍 와 있었다.


강릉을 빠져나가는 길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머리 위로 전투기들이 낮은 자세로 비행장을 드나들었다. 적군에 밀리는 부대가 폭격이라도 요청한 것 같았다. “이 소음을 듣고 어떻게 살까!” 불만에 불만을 늘어놓았다. 심지어는 손바닥을 넓게 펴서 귀를 꼭 막아야 할 때도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표정으로 걸어가는 행인들이 신기했다. 그들은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그렇게 걸어 다닐 것 같다.


낯설고 작은 고개를 넘는데 ‘산불감시’ 깃발을 단 오토바이가 한 대 멈춰 선다. 몸집이 좀 있는 아저씨는 무표정한 얼굴로 “어디서 왔어요?”라고 묻는다. 우린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강릉에서 걸어오는 길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자기가 물으려고 했던 건 ‘Where are you from?’이 아니라 ‘Where are you come from?’ 이었다는 뜻인지 “그 전에는요? 어디서 왔어요?”라고 한다. 심문받는다면 꼭 이런 기분일거라고 생각한다.


속으론 ‘이 아저씨 우릴 간첩으로 오해하고 있는 건가?‘하며 비교적 자세히 대답했다. “서울에서 출발해서 동해까지 걸었고, 다시 통일전망대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길이에요.” 그제야 우리를 ‘대한국민 국민’으로 취급하겠다는 것인지 고개를 끄덕인다. 


정동진 쪽으로 가겠다는 우리의 행선지를 들은 뒤, 비교적 상세히 그곳으로 향하는 길을 알려주고는 사라졌다. 아무래도 강릉 쪽에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간첩침투사건’으로 떠들썩한 곳이었으니 그러려니 했다. 


작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철길과 바다를 동시에 만났다. 바다 바로 옆을 달리는 철길과 그 옆에 바짝 붙은 도로. 아마 전국 바닷길 중 바다와 가장 가까운 철길과 도로임이 분명할 것이다. 만화 같은 그림이 그려진, ‘예쁜’ 열차가 가끔 지나갔다. 개중에는 좌석이 바다로만 향한 것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해변과 철길이 가장 가까운 강릉 정동진 일대.



바다 반대편에는 대체로 산이었으나 도중에는 ‘통일공원’이라는 곳도 나타났다. ‘공적비’같은 커다란 조형물이 있는 것 같기도 했으나 한쪽 편에 오래된 비행기가 있는 건 분명했다. 비행기 날개 끝이 보였다. 올라갈 엄두가 안 났던 것은 아마 가파른 길 때문이었을 게다. 끄트머리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던 것도 한 몫 했을 듯. 우릴 쳐다보는 이는 많지만 그는 꼭 우릴 간첩취급 하는 듯한 눈빛을 쏘고 있었다.


조금 더 지나간 곳에는 바다에 들어가 있어야 할 거대한 것들이 세 개나 육지에 올려져 있었다. 잠수함, 작은 배, 엄청나게 큰 배 등 이렇게 세 개. 2000년에 도보여행을 하며 이곳을 지나갈 땐 분명 잠수함 한 대 뿐이었다.


잠깐 쉬어갈까 싶어 입구로 들어가니 유니폼 차림의 직원이 가로막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그의 표정과 질문은 꼭 ‘어떻게 남한에 오셨어요?’라는 듯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여기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하나요?”라는 질문에도 “그렇긴 한데, 어디서 오신거에요?”라고 되물었다.


또 한 번 우리의 일정을 자세히 설명해야 했다. 서울에서 출발해 동해까지 갔고, 다시 통일전망대에서 걸어왔다는 것 말이다. 입장권은 팔 생각도 없는 듯 우리의 ‘출신’과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서만 궁금해 했다. 나는 입구 옆의 쉼터를 가리키며 구경은 하지 않을 테니 잠깐만 쉬어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는 ‘좋은 곳’이 있다며 ‘따라오라’하곤 앞장섰다. 기차놀이 하듯 서로의 허리를 잡았다면 꼭 ‘포로가 된 간첩’이 된 모양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 관광객 무리가 심봉사 눈 뜬 것 마냥 큰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본다. 또 한다는 소리가 “북한에서 왔어요? 꼭 북한사람 같네!” 그 말에 ‘헐…….’ 마냥 기가 찼다. 이 할머니들에겐 이곳에 전시된 북한군 잠수함보다 ‘진짜 간첩’같은 우리의 인상이 짙게 남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연달아 벌어지는 이 기이한? 현상이 불편했다. 옷이 좀 지저분하고, 얼굴은 검게 그을렸으며, 물로만 감은 머리는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뿐이다. 7번 국도를 따라서는 얼굴과 옷차림이 보이지 않는 수많은 차량들이 오갔다. 차라리 의심을 하려면 그 모든 차량들을 의심해야 마땅했다. 어느 간첩이 ‘나 간첩이오!’ 하고 걸어 다니나?!


한편으로 차라리 누군가가 신고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잡혀간 그곳에서 ‘날 의심하는 당신들보다 훨씬 더 엄격한 곳에서 군 생활을 하고 국가에 충성했다’고 당당히? 밝히고 싶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곳엔 한국인보다는 일본인, 홍콩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더 많았다. 그런 탓에 우리가 더 ‘외국인’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선을 모으는 것도 우리였다. 서로 밀어내는 자석의 같은 극처럼 사람들 사이로 뿌용뿌용 밀려다녔다. 



1996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공비침투사건. 그들이 타고온 침투잠수함.


북한이탈 주민들이 타고 온 '초라한' 나무배 뒤로 퇴역함인 전북함 '거대하게' 서 있다.



1996년도를 떠들썩하게 했던 잠수함도, 북한주민들이 타고 왔다는 탈출선도, 해군력을 자랑하기 위한 퇴역함 ‘전북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빨리 빠져나가야겠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보고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하는 것도 관광지에 대한 ‘의무적인 예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일대는 ‘안보교육’이 참 잘 된 상태 같았다. 낯선 사람은 일단 의심부터 하고 살펴보고, 묻는다. 잘못된 국가정책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두고 ‘친북좌파’나 ‘빨갱이’라며 눈 뒤집힌 채 달려드는 사람들보단 덜 하지만 말이다. 우리 가방에 붙은 글자 ‘생명’과 ‘평화’가 안보교육 ‘모범생’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 해변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철조망이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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