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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잃은 비둘기 너무 불쌍해요.

지구를 지켜라

by 채색 2009. 6. 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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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창가 앞 비둘기가 한 마리 앉아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도 날아가지 않는 그가 이상했습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왼쪽 날개가 축~ 쳐져 있고 털도 좀 빠져있었습니다. 핸드폰 사진기를 가까이 가져가 찍어보아도 그대로였습니다. 1m 남짓한 폭의 창 받침 그 안에서만 돌아다닐 뿐이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다른 분이 알려주셔서 보았던 것이죠. 비둘기는 날개를 완전히 다쳐서 날 수가 없었나 봅니다. 그대로 있다가는 길고양이에게 잡혀 먹힐 것이 분명해보였습니다. 누군가는 구조해줘야 하는 상황.

114에 전화를 걸어 동물구조관리협회 전화번호를 알아냈습니다. 지역번호가 경기도의 것. 만약에 구조를 요청하더라도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하고보니 ‘업무시간은 오후 6시 까지입니다.’ 라는 자동응답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6시 이후에 다친 동물들은 구조를 못하는 것인가...하고 생각을 하다가, 구조를 하더라도 업무시간에 해야하는 것은 맞지..하며 넘겼습니다.

서울에 뭔가 있지않을까 하며 서울시 다산콜센터(120)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는 유기동물과 관련된 단체만 있고, 야생동물에 대한 것은 없었습니다. 콜센터의 직원은 119에 전화를 해보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19에 전화를 걸었죠.

불난 것도 아니라서 119에 전화하는게 조금 껄끄러웠습니다. 그러나 그곳 직원은 친절히 대답해주었습니다. 물론 제가 원한 대답은 아니었지요. 이런 새 같은 경우는 자신들이 구조를 하더라도 사무실에 그냥 두고 보는 수밖에 없다구요. 치료나 그런 것도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어디로 문의를 해야할까요 하며 물었더니 동물구조관리센터로 전화를 하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방금 전 전화했던 그곳으로 말입니다. 다시한번 ‘업무시간은 오후 6시까지입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비둘기는 얼마전 ‘유해야생동물’ 목록에 들어갔습니다. 많은 시민들, 단체들에서 반대를 해왔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국부적으로 과밀하게 서식하여 분변(糞便) 및 털 날림 등으로 문화재 훼손이나 건물 부식 등의 재산상 피해를 주거나 생활에 피해를 주는” 비둘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동물구조센터에 연락이 되더라도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이더군요.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어 잡아 없애야 하는데 그것을 치료하고 야생으로 돌려주기 만무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건강이 다소 회복될 때까지 돌보아 주기로 결심하곤 박스를 이용해 그의 집을 만들었습니다.


온전한 박스는 없었기에 두 개를 테이프로 연결해 만들었습니다. 날지를 못하니 그냥 걸어다니며 밖을 볼 수 있도록 문턱을 낮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외진 베란다에다 놓아두려고 했지요. 날지 못하지만 날 수 있게 됐을 때 날아가라고 말입니다.

만들어진 박스를 들고 비둘기가 있던 창턱으로 갔습니다.

어?? 비둘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속으로는 잘됐다 싶었습니다. 움직이지 못해 도와주려고 했던 것인데 거기서 빠져나올 만큼은 힘이 있었다는 뜻이니까요. 그래도 혹시나 싶어 주변을 돌아봤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쉼터의 난간에서 기웃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냥 잠시동안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폭의 난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더군요.



박스에 넣으려는 마음은 없어졌습니다. 턱이 낮은 박스는 어차피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는 그정도 낮은 턱은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사방이 꽉 막힌 박스에다 가둘 수는 없었습니다. 영문을 모를 그 새는 밤새 발버둥 치다가 기력이 쇠해져 죽을 테니까요.

그저 바라보는 것,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갔습니다. 한계단 한계단 올라섰습니다. 하늘을 날아야 할 새가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모습을 보니 참 안쓰럽더군요. 가장 상층에 올랐을 때, 잘됐다 싶어 구석으로 몰고는 쌀을 가져와 뿌렸습니다. 조금이라도 배를 채우고 기력을 회복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공원에서 과자만 먹는 것을 봤으니 딱딱한 쌀도 먹을까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잘도 먹었습니다. 어설픈 날개짓이 우울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더 손쓸 도리가 없습니다. 이제 살아남는 것은 그의 몫입니다.

하룻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그 자리에 갔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떠났거나, 고양이가 잡아갔거나... 둘 중 하나겠죠.

잘가라 비둘기야. 잘 못해줘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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