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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된 비석, 울진내성행상불망비

여행

by 채색 2009. 4. 21.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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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돌로 만들어진 비석(碑石)은 봤어도 철로된 것은 처음 봤습니다.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비석이 아니라 '비철'이나 '철로 된 비'라고 얘기해야겠죠.

울진 두천리라고 하는 곳에 세워진 두개의 '비'인데
과거 이곳에서 큰 공을 세운 두 사람에게 감사의 뜻으로 세워졌습니다.

'내성행상접장정한조불망비', '내성행상반수권재만불망비' 이렇게 두 비 입니다.

안내문의 설명에 의하면, 행상들 중 최고의 지위를 가진 접장 정한조와 반수 권재만의 은공을 기리고자 세웠다고 나와 있습니다. 교통이 매우 매우 불편한 당시(19세기 후반), 특히 더 불편한 울진 지역에서 행상들의 활약은 지역민들에게 대단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필요한 물자를 가져다 주는 그들이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울진지역의 행상들은 주로 봉화장 및 그 주위의 장과 거래를 했다고 나옵니다. '내성'은 현재 봉화의 옛 지명입니다. 울진쪽에서 구매한 해산물을 들고 봉화쪽에서 갖가지 생활 필수품들로 바꾸어 왔다고 하네요. 지금이야 돈이라는 편리한?? 존재가 '물물교환'이라는 것을 안해도 되게 만들었지만, 19세기 말 당시에도 힘든 물물교환을 했다는 것이네요. 쪽지게를 이용해 물건을 날랐다고 나오는데 그 고통이 심히 짐작이 됩니다.

그들 행상들에게 이 불망비가 얼마나 뜻깊은 존재였을까요. 보람이 넘쳐났겠죠?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 울진 내성행상 불망비

두천리 마을에서 시작된 산길은 십이령 고개(열두개의 고개)를 넘어 봉화(내성)로 이어집니다. 그곳에서 또 전국 각지로 길은 이어지겠죠.

철로 된 비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비' 하면 두꺼운 비석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이곳은 얇은 철로 된 비 입니다.
내성 행상 접장 정한조 불망비 라고 또렷하게 돋을새김(양각) 되어 있습니다. 접장은 다음사전에 '조선 시대에 접(接)의 우두머리를 일컫던 말이다. 접(接)은 글방 학생이나 과거에 응시하는 유생(儒生)들이 모여 이룬 동아리이다. 그럼으로 서당의 우두머리 즉 현대의 반장에 해당한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내성 행상 반수 권재만 불망비 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반수는 사전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작은 단위를 나타내는 '班'의 '首'니까 접장보다는 조금 낮은 지위의 우두머리인 것 같습니다.

안내판입니다.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누구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 분들은 이름을 쇠에다가 또렷하게 남겼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남긴 것이 아니라 도움을 받았던 분들이 세운 것이니 저쪽 나라에서 매우 므흣해 하고 있을 듯 하네요. 비가 세워진지 100년이 지난 지금 정한조와 권재만의 이름을 인터넷에 쓰고 있는 저의 모습이 좀 어색하면서도 흥분되네요.

100년 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기억해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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