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짐작컨데 대부분은 "네? 벼가 꽃이 있다구요?"라는 반응을 보일 것 같은데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저 역시 본 적도 없고, 생각해본적도 거의 없는 사람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그냥 벼도 식물인데 꽃이 있긴 하겠지 하고 넘겼고, 그걸 꼭 챙겨보겠다거나 하진 않았죠. 


때는 그저께 아침, 벼 꽃을 구경하고야 말았습니다. 집 뒤 텃밭을 어슬렁 거리다가 벼에 이상한 무언가가 붙어있는걸 발견했습니다. 쌀알이 곧 차게될 부분, 그러니까 이삭에 크리스마스 트리의 걸어놓은 전구처럼 장식이 돼 있었습니다. 이삭이나 벼잎에 비해 워낙 밝은 빛이어서 '전구'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정말 작아, 코가 닿을 만큼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다른 곳에서 이사온 식물이 아니라 벼 이삭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벼 꽃?'하며 놀랐고, 얼른 방으로 후다닥 뛰어가 도감을 살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벼 꽃이 맞았습니다. 설명을 보아하니 껍질 속에서 수술이 여섯개가 나오고 껍질 속에 암술이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라고 표현했던 것은 바로 그 수술이었던 것입니다. 


벼 꽃은 꽃이 필 때 흔히 쓰는 '핀다'는 표현을 쓰지않고 '출수'라는 표현을 쓴다고 합니다. 출수는 '이삭이 열린다'는 뜻이라는데요. 아무래도 벼 꽃을 꽃으로 봐주기엔 너무 '작고' '초라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네요. 


게다가 불과 3~5일동안 꽃이 피고, 꽃이 피고난 뒤 두어시간 동안 자가수분을 하기 때문에 '눈 깜짝할 동안'만 등장 후 퇴장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거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벼 꽃이 폈다고 할지라도 유심히 보지 않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8월 말이나 9월 초, 벼 꽃이 필 시기에 논을 지나가도 얼굴을 논에 들이밀지 않으면 그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올리가 없죠. ^^ 


하루 한 끼 군거질로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해도, 두끼 정도는 매일매일 먹는 쌀 아니겠습니까. 그 어떤 종류의 식물보다도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쌀입니다. 이런 '쌀'의 꽃을 본 건 개인적으로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ㅋ


아, 벼 꽃이 핀 이 벼는 또 특별한데요. 우리 땅에서 많이 사라져버린 토종벼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에 흙살림이라고 하는 단체에서 얻은 다마금이라는 토종 볍씨를 밭에다 심은 거거든요. 키가 보통 벼의 두배도 넘는 것 같네요. 이 땅에서 사라진 이유가 키가 너무 커 잘 쓰러져서라는데, 정말 키가 큽니다.


이 꽃들이 수분을 잘 해서 튼실한 쌀을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텃밭 한켠에 토종벼 다마금을 심었다. 볍씨를 얻기 위해서.


가까이 가보니 뭔가 흰 것이 달려있다. 뭐지?


꼭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같이 지저분 하면서도 아름다운, 흰 빛


수분을 마치고 힘없이 축 늘어진 수술도 있고.


막 껍질에서 나와 수분을 하려는 수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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