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샌가 쌀알이 불쑥 올라왔다.


한 뭉텅이에서 몇 줄 씩 된다.


봄에 풀을 잡아준 곳만 이렇게 남겨뒀다. 



뭐라고 표현해야될지 모르겠네요. 온갖 풀들과 함께 자라 제대로 성장도 못하고 심는 방법도 다른 밭들과 다르게 해서 속으로는 '올해는 그냥 포기다'하고 있었는데, 기적적으로 그 벼에서 쌀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설명을 해야할 것 같은데요. 일반적인 벼농사는 논 한쪽에서 모를 키워 이앙기로 벼를 심습니다. 그 전에 퇴비를 잔뜩 뿌리고 트랙터로 논을 갈아엎고, 평평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저희 논은 이런 방식에서 살짝 벗어나 '직파'라는 걸 시도해봤습니다. 즉, 볍씨를 논에다 바로 뿌리는 겁니다. 


이렇게 한 건 기존방식이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기계를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가장 걸렸습니다. 땅을 갈아엎고 평평하기 위해 트랙터를 써야하는데, 이 거대한 기계가 논에 들어가면 땅도 딱딱해지고, 또 기계가 없는 우리에겐 늘 이 기계에 의지하게 되니 처음부터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던 겁니다. 


환경적인 얘기를 또 하자면, 식물에 의해 고정돼 있던 땅 속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땅을 갈며 공기중으로 나오게 된답니다. 그러니까 트랙터의 사용으로 1차 환경오염, 땅 속을 뒤집음으로써 2차 환경오염 이렇게 되는 거죠. 아무튼 스스로의 힘으로 다 하고 싶은 욕심이었습니다.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농사를 짓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작년까지는 이 논에서 늘 기계를 써 왔으므로 작년 가을에도 수확을 위해 콤바인이 들어왔었습니다. 콤바인 자국이 논 이곳저곳에 나 있었어요. 그 자국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요철들을 많이 만들어놔서 울퉁불퉁 장난이 아니었죠. 다시말해 논은 수평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 수평이 매우 흐트러져 있었던 겁니다. 


기계를 쓰지 않겠다며 이걸 삽으로 최대한 수평을 맞추려 했었습니다. 이틀 삼일을 논에 붙어서 삽질을 해도 끝도 없더군요. 거의 700평에 가까운 논을 사람의 힘으로 한다는건 무리가 있었습니다. 첫 농사라 '이정도로 괜찮겠지'하며 넘기고, 볍씨를 심었습니다. 


30cm 간격으로 일일이 허리 숙여가며 볍씨를 한움큼씩 넣었습니다. 조금 편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인데 아마 손으로 모내기 하는 수고만큼은 한 것 같습니다. 그 뒤 시간이 지나자 벼와 풀이 거의 동시에 대책없이 올라왔고, 주변 논밭의 어르신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까지 한 것입니다.


풀들이 너무많이 올라와 숲이 돼 버린 곳은 벼,풀 할 것 없이 다 베어 버렸습니다. 따로 풀만 매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풀이 어느정도 정리 돼 있는 20%정도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 매 버렸죠. 그 20%는 다행히 초반에 풀들을 잡아준 곳입니다. 


설명이 길었네요. 남겨둔 벼에서 이번에 쌀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논에서는 벌써 몇 주 전부터 쌀알이 열렸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는 저희 논을 보고는 '아무래도 비료를 안줘서 그런가보다'하며 열리지 않을거라 예상을 한거죠. 비료를 주지 않아도 쌀알 굵기가 작을 뿐 열리긴 하는데 말입니다.


아침에 논을 보며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아 이제 진짜 우리 쌀로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하고요. 진짜 밥을 먹어봐야 그 느낌은 알 것 같긴한데, 쌀알을 보고나니 벌써부터 배가 부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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