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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밭 일, 땅을 숨쉬게 하다.

농사짓기

by 채색 2013. 2. 1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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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땅을 구했습니다. 올해부터 농사지을 땅이죠. 한참만에 구한 것이 마침 겨울이라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시월만 됐어도 마늘같은 작물을 심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일었습니다.


우리 밭 전 주인 할아버지는 그 땅에 콩을 심었었습니다. 여느 밭이 그렇듯 비닐멀칭이 되어 있었지요. (멀칭이란 작물 주변을 덮는 것 또는 덮는 일) 그래서 작물이 자라있던 곳만 구멍이 송송 나 있을 뿐 나머지는 검정 비닐로 꽁꽁 싸여져 있었던 것이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저로써는 이 비닐이 눈에 자꾸만 걸리더군요. 겨울은 겨울답게 눈도 맞고 추위도 견디며 얼었다 녹았다 해야 자연스러운 땅이 될테니까요. 비닐이 덮여있으면 눈이 직접 맞지 못할 뿐더러 그 때문에 땅 속으로의 수분도 적게 들어갈 것입니다.


비닐멀칭이 돼 있는 우리밭.


동영상도 만들었습니다. 비닐을 걷어내는 유하와 채색을 볼 수 있습니다. 



맘 속에선 자꾸만 '가을에만 이 땅을 샀으면 낙엽도 뿌려놓고, 거름도 깔아놨을텐데...'하고 아쉬움이 일었습니다. 그렇게 낙엽과 거름이 땅 위에서 겨울을 함께 나면 아주 기름진 땅이 되었을테니까요. 이런 아쉬움은 올해 말에 실행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꼭 낙엽으로 뒤덮으리라!"


추운 날씨 때문에 늘상 땅은 꽁꽁 얼어있어 또 벗겨내기도 어려워 보였습니다. 땅은 꽁꽁 얼었는데 비닐을 벗기려 억지로 당긴다면 다 찢어지며 땅 속에 비닐이 남을테니까요.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올겨울 봉화는 영하 25도까지 내려갔답니다!)


다행히 그 와중에 날씨가 풀린 며칠이 있었습니다. 마침 비마저 내려서 주변의 눈도 다 녹았습니다. 비닐을 벗기기엔 안성맞춤. 차를 끌고 밭에 나갔습니다. 아직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달달 거리는 중고트럭에 삽을 싣고 밭에 나가는 마음이 여간 기분좋은게 아닙니다.^^


우리 밭은 240평정도 됩니다만, 경작할 수 있는 땅은 200평이 좀 안됩니다. 숫자만 들으면 얼마 안되는 것 같은데 쳐다보니 꽤나 넓더군요. 비닐은 1m 정도의 간격으로 촘촘히 깔려있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비닐멀칭 벗기는 일은 몇 번 해본 터라 부담은 없었습니다. 



비닐을 벗기고 있는 유하 (군복은 제꺼에요. 더러워져도 가장 아깝지 않은 옷을 찾다보니...)


밭에는 겨울을 나고 있는 식물들이 더러 있었다.


밭에는 겨울을 나고 있는 식물들이 더러 있었다. _2



유하는 땅의 서쪽 끝에서, 저는 동쪽 끝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 둘은 고집이 센 사람들이라 은근 자기가 일을 더 했다며 자랑질을 할 요량으로 그렇게 한 듯 합니다. 기상청 보도 상 낮기온은 7~8도 정도로 일을 하기엔 딱 적당한 기온이었습니다. 


비닐은 이랑을 중심으로 덮은 뒤 고랑에다 흙을 얹여 마무리 합니다. 벗기는 것은 역순이 되어야겠죠. 비닐을 끝에서부터 차근차근 벗겼습니다. 이랑 끄트머리의 흙을 치운 다음 비닐을 잡고 일어섭니다. 그리고 탈탈 털며 비닐 위의 흙을 바깥으로 내보냅니다. 비닐을 말며 조금씩 나갑니다. 


비닐이 덮힌 수 십개의 이랑이 하나 둘 비닐 옷을 벗었습니다. 땅의 원래 빛깔, 검정 빛이 아닌 흙 빛으로 돌아왔습니다. 실은 땅을 봤을 때 흙이 어떤지는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제서야 우리 땅의 흙이 어떤지 볼 수 있었습니다. 


봉화의 많은 땅은 마사토질이 많습니다. 그 흙들은 입자가 굵고(?) 유기물이 적어보입니다. 다들 농사는 잘 짓고 계신데 좀 꺼려지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땅은 마사토가 많이 섞여있긴 한데 검정빛의 찰진흙?도 적당히 섞여있었습니다. 우리 땅이 농사 책에서 보던 '좋은 땅'에 속하지 않을까 속단해 봅니다.^^


비닐을 벗기다 보니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잎이 녹색으로 된 녀석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냉이나 민들레같은 식물이었지요. 이들은 어느 땅에나 잘 자라는 식물이지만 그래도 우리 땅에 자라고 있으니 여간 반가운게 아니었습니다. 봄이 되면 우리가 먹을거라고 생각하니 군침도 돌았습니다. 봄 날에 먹는 냉이 된장국! 안그런가요?


비닐 벗기는 일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습니다. 두시간도 채 안걸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 주인 어르신이 이전에 쓰고 버린 비닐이 밭 한 쪽에 쌓여있어서 그걸 빼내고 옮기는 시간이 꽤나 걸렸으니, 그 시간을 뺀다면 더 짧았겠죠. 


비닐을 차에 다 싣고, 비닐처리 장소로 향했습니다. 대부분의 시골 마을 입구 근처에는 폐비닐 수거장이 있습니다. 아마도 녹여서 재활용을 하겠죠? 


비닐을 다 내려놓고 집으로 가는 길, 얼마나 상쾌한지요. 검정 비닐들을 다 벗긴 밭을 생각하고 있자니 막혔던 코가 휑~하고 뚫린 느낌입니다. '숨을 크게 쉰다'는건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몇 분동안 흘렸던 땀들이 금세 다 말라버렸습니다. 역시 우리들은 땀을 흘리는 일을 해야 하는가 봅니다.^^


비닐을 다 벗기고 제대로 숨쉬게 된 우리 밭. 내 콧구멍이 다 벌렁거릴 정도로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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