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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만들기 정책, 말 좀 할께요.

여행

by 채색 2009. 4. 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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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걷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콘크리트 성장을 해오며 마음의 병을 많이 얻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걷기'는 그에 대한 대안 중 하나로 나온 듯 하구요. 그에 대한 관심에 따라 정부에서도 많은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요. 환경부의 '생태탐방로', 산림청의 '전국 산림문화체험 숲길’, 문화관광부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 등이 그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정책들을 환영합니다. 정말 환영합니다. 콘크리트와 쇠조각, 지독한 매연에 둘러쌓여있는 현실에서 '자연 속을 걷는' 정책을 펼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하지요. 그러나 몇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어 살짝 끄적입니다.

길과 길, 길 사이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지리산길’에서 드러나듯 현지의 주민들 중에는 찬성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현지인들의 거주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게 하는 등 갑작스레 변화시키는 것은 어떤 면에서 ‘혐오시설’을 설치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들의 의견을 듣고 동의를 얻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숲에는 야생동물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지역주민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생존할 수 있는 터전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비해 가뜩이나 좁아진 입지 때문에 궁지로 몰리는 상황에 ‘숲길’까지 들어서 사람들이 깊은 숲까지 들어가게 된다면, 인간과 동물의 공생관계는 최악의 상황을 불러올 것입니다.

옛길이나, 오랫동안 다니지 않은 길은 자연으로 되돌아가 회복단계에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자연물이 그렇듯 길도 돌아갔습니다. 그런 길을 살려내어 사람들을 다시 다니게 한다는 것은 ‘죽은 이’를 살려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것이 ‘좀비’ 또는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괴물’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움직이지만 정말로 살진 않았습니다. 죽어있는 길이 아닌 정말로 살아있는 그런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길의 복원은 생태계 파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좀비’가 되느냐, 살아있느냐 어떠냐에 따라서 말입니다. 살아있는 길은 주변과 어울려 길 그대로가 자연이 되겠지만 죽은 길은 생태계 파괴를 불러옵니다. 예를들면, 길의 확장을 막기 위해 설치한 시설물(데크 등)은 보호효과는 크지만 사람들이 자연을 직접적으로 느끼는데 큰 불편을 끼쳐 본래의 조성의도를 거스르게 됩니다. 그 외의 인공적인 구조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아름다운 자연을 소개하겠다는 좋은 취지가 수많은 사람들을 몰려들게 만들어 망가지게 만든다면 안되겠지요.

산림청의 산림문화체험 숲길은 말 그대로 산림과 문화를 체험하는 길입니다. 그저 길만 있다면 여행자들은 지겨워할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강원도의 약수숲길이나 야생화숲길, 호반숲길이나 동학숲길 등의 주제를 가지고 조성을 하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길이 들어서기 전 컨텐츠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과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구상을 하지않은 상태에서 길이 조성이 된다면 ‘팥속 없는 호빵’이 될 것입니다.

제한적인 통행이 필요합니다. 모든 길을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야생동물이 다수 서식하는 곳 등 특별히 보호가 필요한 지역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합니다. 앞서 주민의 반대, 야생동물의 보호, 길과 그 주변의 파괴 최소화 등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것들을 대부분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이 바로 ‘제한적 통행’입니다. 구체적으로 ‘예약제’를 통해 이룰 수 있습니다.

문화관광부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


산양이나 삵, 수달 등 인간활동에 큰 영향을 받는 동물들과 숲길에 대한 관계를 정확히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연구에 따라 일일 통행가능 인원, 숲길 노선 등이 나올 것입니다. 적은 숫자 같지만 일 100명을 통과시키는 것을 가정한다면, 월 3,000명, 연 36,000명이 됩니다. 그런 것을 지킬 수록 길의 가치는 상승할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질랜드의 밀포드 트랙의 경우에도 예약제를 통해 제한적으로 여행자를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랙들은 대부분 이 방법을 통해 ‘보호와 개방’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산림에는 임도가 많이 있습니다. 산을 지나는 숲길의 특성상 임도와의 만남은 불가피합니다. 대부분의 임도는 산림청의 의도대로 관리 및 긴급차량 이외에는 통행이 불가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에게 개방된 임도도 적지않습니다. 멀리서부터 ‘숲길’을 여행하기 위해 방문한 여행자가 그곳에서 매연과 시끄러움을 동반한 차량을 만난다면 여행의 묘미는 반감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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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 땅의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육상 동물들의 서식처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맷돼지는 물론이고 동북아시아에서만 주로 서식하는 일종의 희귀동물인 고라니까지 유해조수로 지정해 씨가 마르게 합니다. 최근에는 비둘기까지 유해조수로 하자고 해 논란이 되었죠. 아니 아직 논란 중입니다. 가져도 가져도 줄지 않는 욕심이라지만 너무한다 싶지요.

길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차량들이 다니는 도로를 전국 방방곳곳에 쭉쭉쭉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길로 인해 야생동물의 고립이 이루어졌고, 유해조수로 몰리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제는 또다시 걷는 길을 만들자고 하는 겁니다. 그 걷는길 위해서 방해가 되는 많은 것들이 사라지게 되겠지요.

이 정책을 펼치는 분들께 꼭 당부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이미 자연으로 돌아간 길은 되도록이면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수많은 자동차 도로들 중 쓰임이 많지않은 곳을 복구해서 만들어보는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보호가 필요한 동물들이나 식물들이 많이 살아가는 곳에는 꼭 제한적 통행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시간을 두어 어떤것이 옳은 방법인지 충분히 고심을 한 뒤에 사업에 착수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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