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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리는 살아도 고향은 없어져!

강의 눈물

by 채색 2011. 3. 1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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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감사합니다.


며칠 전 삼강리에 다녀왔습니다. 삼강리는 금천, 내성천, 낙동강이 함께 합수하는 지점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곳에는 많은 분들에게 알려져 있듯, 삼강주막이 있습니다. 

4대강 공사는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이곳도 비켜가지 않았는데요. 삼강주막 주변으로도 파괴의 삽날은 강 바닥을 파헤치고 있었습니다. 조용하던 마을에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의 소음이 덮치고 있었습니다.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이곳을 보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합수지점답게 다른 곳보다 유난히 많은 모래톱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지만 무지한 정부에겐 '사막'이며 '동맥경화'일 뿐입니다. 이 공사는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져 있던 고풍스러운 삼강주막의 격을 한참이나 떨어뜨리는 듯 보였습니다. (실은 삼강주막 자체가 '복원'이 되며 과거의 분위기는 사라진 상태이긴 합니다.)

아픈 풍경을 쳐다보다 비슷한 곳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습니다.


"삼강리는 살아도 고향은 없어져!"라고 크게 힘주어 말씀하시던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눈이 어둡아 빠졌는데 낑구질 못해~"

연결핀이 빠져버린 시계를 내밀며 말을 거셨습니다. 누구라도 끼우기 힘들겠다 싶은 핀을 끼워드리고는 할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강을 대면했습니다. 다시 우리쪽으로 얼굴을 돌려 미소를 지으시곤,

"공부하러 댕기지? 지리공부하나?" 
라고 물었습니다.  "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지리공부 다름 아니니까요. 주변 공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 궁금해서 살짝 유도질문을 던졌습니다.

"저기 공사는 무슨 공사에요?"
"4대강 살리기 개발공사지, 요 제방공사는 원래 하기로 돼 있었는지 이번에 새로 하는건지 집 쪽으로 5m밖에 안됐는데 이만큼 늘캤어.. 땅을 얼마나 잡아먹었는데..."

질문이 떨어지자 마자 큰 소리로 대답을 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할아버지의 시원시원함에 놀랐습니다. 저도 같은 경상도 사람이라 마치 우리 할아버지가 말하는 듯 들렸습니다. 물론 돌아가신지 꽤나 되었지만요. 지난 제방보다 훨씬 더 높고, 넓게 한 것이 다소 이해가 안돼 할아버지께 여쭈었습니다. 

"할아버지 제방 쌓은게 여기 물난리가 나서 그런거에요?"
"여기 물난리 났으면 부산은 바다 돼뿐다. 상주 사벌만 가도 넘었는데, 여긴 생각보다 높아.."

홍수가 나지 않는데도 제방공사를 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걸 할아버지께 물을 수는 없었습니다. 잠시 할아버지 모습을 담고 주변을 바라보았습니다. 다리 아래에 교각보호공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내성천에서 흘러내려오는 맑은 물이 낙동강 준설공사장에서 나오는 흙탕물과 만나며 묽어졌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공사 하는거에 대해서 마을 어르신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는 거 모르지 머.. 하면 하는갑다.. 그거까지 어떻게 신경쓰노. 되면 되고 안되면 안되고. 그대로도 살았는데 또 하면 더 나아질라고 하겠지머.. 더 안좋아지도록 할 것 같으면 하겠나?"

4대강 사업으로 더 안좋게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괜한 걱정을 드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인사를 드리고 돌아가려는 찰나,

"삼강리는 살아도 고향은 없어져!"

꾹 누르며 참고있다가 뱉어낸 말인지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놀라 뒤돌아 봤습니다. 할아버지는 말을 이었습니다.

"논 아래쪽 위쪽 저쪽 해서 관광공원을 조성한다카이... 농토 없으면 뭐먹고 사노?!"
"아..."
"여기서 삼사백년 살았는데 고향은 없어지고.. 걱정이라.."

답답하셨던 모양이었습니다. 정부에서 하는 것이라 참고 있긴 했지만 오랫동안 살아온 마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화가나신 듯 했습니다. 아무리 정부정책이라도, 보수적인 마을이라 할지라도 오래된 문화가 파괴되고 삶의 터전이 송두리채 바뀌어버리는 것은 쉽게 넘겨버릴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한 마을에 오랫동안 산 사람일 수록 애향심은 깊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흙과 바람, 물과 식량까지 한 자리에서 얻는 곳이라면 남다르다고 여겨집니다. 자연과 소통하는 곳은 훨씬 더 진할 수 밖에요. 한국전쟁 때 북에서 남으로 피난온 할아버지들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과 연결시켜본다면 더 슬픕니다. 

"이제 얼마 안남아서 살다가면 되지만,, 고향이 없어진다니까.." 라며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선합니다. 

삼강주막과 주막 앞 4대강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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