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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상담 받으러 갔다가 외면당한 사연

귀농/귀촌 정보

by 채색 2012. 12. 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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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집 발견!


귀농을 하면, 먼저 집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노숙을 할 건 아니니까요. 저는 귀농을 마음먹고, 서울을 떠났을 때 집을 빼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봉화에 도착했을 때는 집 없이 지낸지 6개월이 지났을 때인 거죠. 누구보다도 집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춘양면에 도착을 한 뒤, 일단 춘양 버스터미널 근처에 짐을 풀었습니다. 이 오지 시골에도 여관비는 여느도시와 다르지 않더군요. 3만5천원 내지는 4만원이었습니다. 며칠이나 묵어야 하는 제 입장에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춘양터미널 옆 골목 태백여관이라는 곳을 찾아냈습니다. 하루 2만5천원인 것을 며칠 묵는다고 살짝 깎기도 했습니다. 


일단 춘양면을 한 번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이미 백두대간을 넘어오며 보긴 했지만 짐이 실려있어서 자세히 보진 못했거든요. 자전거로 오르막을 또 오르는건 엄두가 나지 않아 버스로 춘양면의 끝, 서벽리까지 간 뒤 그곳에서부터 자전거로 내려왔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멀지않은 곳에 빈 집이 보였습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단층 양옥이었는데요. 집이 비게된 지 오래지 않아보였습니다만, 분명한 빈 집이었죠. 정류장의 작은 가게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제 목소리는 엄청 흥분된 상태였죠. 오자마자 괜찮은 빈 집을 발견한 것이니까요. 


가게에서 산 음료를 벌컥벌컥 마시며 물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요기 옆에 양옥집 있잖아요. 길 건너서.. 저기 사람 안사는거 같던데, 맞아요?"


할머니는 가벼운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이고선, 


"그 집 사람들 다 도시 나갔지..."


하고 그 집이 빈 집임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그걸 왜 물을꼬?'하는 할머니의 표정을 읽고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 딴게 아니고요. 제가 귀농할려고 하거든요. 이 마을이 마음에 들어서요. 빈 집을 찾고 있었어요!"


다행히 할머니의 약했던 미소가 훨씬 강하게 변하더군요. 만족스러웠습니다. 이장님 댁에 가서 물어야 하는지, 이장님 댁은 어딘지 확인했습니다. 2차선 지방도 건너편에 바로 이장님의 집이 있었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 집의 정보를 알고있는 건 이장뿐, 그러나 그는 부재중


벨을 눌렀습니다. 인기척이 없더군요. 몇 번이나 눌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남의 집'앞에 서성이는게 어색해서 금방 그 자릴 떴습니다. 조금 전 흥분됐던 마음은 그새 절망감으로 휩싸였습니다. (이런 냄비!) 집을 구하기 시작한 지 한시간밖에 안됐는데 말입니다. 


자전거를 몰고 다른 마을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바로 그 마을 이장님 댁으로 찾아갔습니다. 빈 집이 있는지 확인도 않은 채 말이죠.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혹시 이장님 댁이 어디에요?'라고 물은 뒤, 알려주는대로 찾아가 벨을 누르는 겁니다. 


낮시간이라서 그랬던 걸까요? 이번에도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급한 마음 때문에 이렇게 이리저리 오가는 것도 좀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리곤 면사무소를 떠올렸습니다. 정부에서 귀농정책을 강하고 펼치고 있기에 그곳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빈집을 찾고, 그 마을 이장을 찾고, 빈집을 빌릴 수 있는지 여부를 묻고, 집 상태를 확인하고.... 빈 집을 구하는 건 정말 힘들다.



* 면 사무소에서 빈 집을 파악하고 있다는 소문이...


또 여행하며 얻은 정보 중에는 면사무소에서 각 마을 이장을 통해 빈집의 현황을 파악하고 귀농자가 있을 경우 알려주는 '업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막무가내로 부딪힌건 '젊은 혈기', 특히, 타인의 도움을 최대한 적게 받으려는, 스스로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려는 성격때문입니다.


다음 날 아침 면사무소로 찾아갔습니다. 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면사무소가 있더군요. 규모에 비해서 직원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인지 분위기는 '고요'했습니다. 열려진 유리문 경계를 넘어 안을 180도로 훑었습니다. 제가 담당자를 찾는 목적과 누군가 저를 불렀으면 하는 두가지 목적입니다. 


마침 입구 바로 앞 쪽 책상 위를 보니 '귀농지원상담'이라는 팻말이 붙어있었고, 그 아래엔 직원이 앉아있었습니다. 


"아, 여기네" 저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혼잣말을 내뱉고선,

"귀농 상담 좀 받으려고 하는데요."라며 운을 뗐습니다. 


직원은 '잘 찾아왔습니다'라는 의도인지 미소로 화답을 하며,

"귀농지원상담 받으시게요?"라고 답변했습니다. 


저는 '귀농상담'이라고 했고, 직원은 '귀농지원상담'이라고 했습니다. 뉘앙스가 좀 다르죠? 제가 받아야 할 것이 귀농지원이긴 한데 거기서 말하는 '귀농지원'은 아직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자마자 귀농지원금을 받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온 목적을 소상히 밝혔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제가 귀농을 하려고 하거든요. 여기 춘양이 좋아서 이 쪽에 살려고 하는데요. 집을 구하고 있어요. 빈 집 같은거요."


직원은 자기가 생각했던 질문이 아니었던 것인지 표정이 곧 굳어버렸습니다. 아마도 '귀농지원상담'은 자신있지만, '귀농정착상담'은 자신이 없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즉, 직원은 귀농에 성공한 사람에겐 지원을 해주지만 정착은 지원 못해주는 그런 처지인 것입니다.


직원은 제 소상한 질문에 대답했습니다. 

"빈 집을 조사한 적이 있긴한데요. 흠... 지금은 파악된 것이 없어요. 빈 집 주인들 중에는 공개를 꺼리는 분들도 많구요. 사유재산이라서요. 동네 이장님께 여쭤보시면 있을 수도 있어요."


살짝 허무했습니다. 속으론 '이장님께 여쭤보면 있을 수도 있다는 건 저도 알거든요.', 겉으론 "아... 아쉽네요. 그걸 다 파악하고 있을 수는 없긴 하죠." 라고 반응했죠.



* 모니터 뒤로 숨어버린 직원, 그에게 외면 당하다.


그렇다면, 이장님의 전화번호를 얻어가야겠다 싶었습니다. 외판원처럼 무작정 집을 찾아다니며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춘양면 이장님들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리, **리, **리 하고요, **리, **리 이장님들요."


내 말에 직원의 인상은 상당히 찌푸려졌고, 일단은 알려주겠다는 뜻인지 이장님들의 비상연락망이 적힌 종이를 꺼내들었습니다. 저 종이 하나를 복사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아쉽게도 내가 원한 이장님들 중 단 두 분의 연락처만 빈 종이에 옮겨적었습니다. 그 종이를 받아든 나는 '뭐지?'하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허무했습니다. 수십개의 마을 중에서 단 몇 개만 알려달라고 한 것인데... 


"개인정보라서요. 다 알려드릴 수가 없어요." 직원은 아쉬워하는 내게 '그럴 수 없는' 이유를 알려주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알려줄 수 없는 개인정보인 것은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빈 집을 하루빨리 찾아야 하는 저로써는 '좀 봐주었으면'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니, 그래도.. 좀..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안면몰수하고 사정했습니다. 연락처를 얻지 못하면 마을마다 다니며 이장님댁의 문을 두드려야 하고, 없으면 다른 곳에, 또.. 다른 곳에... 힘들게 찾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직원은, 애원하는 저의 눈빛을 피하기 위해 얼굴을 모니터 뒤로 휙 숨겨버리는게 아닙니까. 마치 '민원인 회피 기술'을 구사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젊은 분임에도 레벨이 상당히 높은 듯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면사무소 안이었지만 마치 밖으로 내던져진 듯한 느낌이었구요. 


사실, 위 글에서는 면사무소에 대단히 오래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과 2~3분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즉 저는 가자마자 외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파악된 빈 집은 없다. -이장에게 가면 알 수도 있다. -그런데 이장 연락처는 비밀이다.



*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수밖에


면사무소에서 얻은 것은 '허탈' 그 자체였습니다. 이렇게 젊은 사람이 귀농하겠다며 흥분된 목소리로 호소를 했지만 반응은 냉냉했습니다. 기존처럼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수밖에요. 




-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 이 글의 요지를 정리해 봅니다.


.귀농을 했다. 첫번째로 찾아본 곳은 춘양면이다.

.직접 이장님을 찾아가 시도를 해봤는데, 마을이 너무 많아 일일이 찾아다니기는 어려웠다.

.면 사무소에서 '빈집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한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2010년 경에 전국적으로 시행됨, 각 면에서는 마을이장을 통해 빈 집을 파악함)

.면사무소에 찾아가보니 파악한 적은 있으나 지금은 빈 집 리스트가 없다, 이장에게 물어보면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살고싶은 마을의 이장님을 찾아뵙고 싶으니 연락처 좀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입장에서는 이장님의 연락처를 모른다면 난감한 상황이다.

.연락처를 알려줄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었을 것이나 면사무소 직원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을 뿐더러 나의 말을 피했음. 모니터 뒤로 숨음.

.스스로 해결해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덧. 댓글들이 '이장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건 너무 막무가내다'라고 많이 달리는데요. 대부분 아시겠지만 시골의 마을 일, 특히 행정적인 것들은 모두 이장을 통해서 하게 되어있습니다. 제가 빈집을 알아보는 방법도 이장을 통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별로 없습니다. '보통의 마을사람'보다는 각마을 이장님들이 집집마다 사정을 더 잘알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가고싶어했던 몇몇 마을의 이장님의 연락처를 알려고 했던 것이구요.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이장님 댁을 알 수도 있습니다. 집집마다 찾아다닐 수도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보다는 연락을 먼저 드린다음에 찾아가는 것이 맞는 것 같지 않나요? 


그리고 이 글은 '연락처'가 핵심이 아니라 '귀농인을 적극 유치하지 않으려는 면사무소' 또는 '업무를 소홀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면사무소'에 핵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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