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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팬츠에 하이힐을 신고, 정상에 서다.

지구를 지켜라

by 채색 2009. 6. 19.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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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덕유산에 혼자 갔습니다. 아래 마을까지 가는 버스는 무주구천동 계곡을 거쳐갔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도로 옆 도랑이었습니다. 유명세에 비해 너무 초라하다 싶었는데, 그 느낌은 제가 지나가던 그 도로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오랜만에 산에 오르고 싶었습니다. 향적봉 아래에 있는 산장에서 하루를 보내려는 마음에 조금 늦은 오후였지만 열심히 올랐습니다. 산 중턱까지 들어선 백련사 때문에 몇 번이고 차량과 마주쳐야 했습니다. 간만에 찾아간 산이었기에 그 차들이 너무 얄밉더군요. 절도 얄밉긴 마찬가지였구요.

절을 지난 후로는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었고, 도심에서 찌든 때들이 땀과 함께 한꺼풀 두꺼풀 벗겨져 나가는 듯 했습니다. 시원했지요. 늦은 봄 날의 덕유산 바람은 시원했습니다. 숲에서 느껴지는 상쾌함은 언제나 그대로인 듯 합니다. 그래서 산을 찾게 되는 듯 하구요. 하늘에 새파랄 때 출발했지만 향적봉 근처에 다다르니 짙은 안개가 깔려져 있었습니다. 어스름도 함께 찾아왔구요.

지나는 안개에 보일랑 말랑 하는 향적봉 정상석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뭔가 뿌듯한 느낌. 주변은 노랑빛의 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흙들이 쓸려 내려갔나 봅니다. 안개는 차가움도 함께 가지고 왔습니다. 긴팔이었지만 얇은 티를 입고 있었기에 몸을 움츠려 따뜻하게 했습니다. 정상에 올라온 다른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간식거리를 나누어 줬습니다. 어린 학생이 혼자 여기에 왔냐고.. 하며 대견스러워 하더군요. 물론 그 때의 나이 25세, 그렇게 어리진 않았네요. (제가 좀 동안이라...)

<<덕유산 정상, 향적봉. 보호 울타리 안에는 풀한포기 없었습니다. 다른 정상에 비해 넓은 지역을 개방해 놓은듯.>>

어디선가 ‘또각’, ‘또각’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뭐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안개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젊은 남녀의 목소리가 들렸고, 곧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굽이 높은 구두와 치마를 입은 여성, 그리고 그의 남친으로 보이는 캐쥬얼 운동화를 신은 남성. 엥?? 뭐지?? 아주 힘들게 매우 힘들게 몇시간에 걸쳐 올라왔건만, 저들은 무슨 재주로 저런 복장으로 이곳에 왔는가.

그들은 여성의 아주 짜증스런 목소리와 함께 잠시 뒤 사라졌습니다. 저는 산장으로 향하는 길에 그들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게 되었죠. 바로 무주 리조트의 곤돌라를 타고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곤돌라 정류장에서 30분도 채 되지않는 거리에 향적봉이 있었던 것이지요. 머리가 멩~ 해졌습니다.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거든요. 평소에 스키를 타보지 않아서 무주 리조트라는 것이 덕유산의 사면을 깎아 만들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지도도 봤을 터이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반대쪽은 관심이 없어서 그랬나 봅니다. 덕유산에 온 것을 정말 후회했습니다. 이런게 무슨 국립공원이냐면서 투덜댔죠.

다음날 남덕유산 방향으로 종주산행을 했습니다. 전날의 짜증이 아주 가실정도로 멋진 풍경을 보여줬습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에도 가보았지만 덕유산 만큼은 아닌 것 같다며 참 좋아했죠. 이유는 숲 속으로 조그마하게 난 길 때문이었습니다. 나뭇가지들이 양 팔을 자꾸만 긁었지만 그게 좋았던 거죠.

그런데 이제는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북한산, 속리산 등등등 유명한 국립공원은 다 그렇게 굽높은 구두를 신고 올라갈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아주 훌륭하신 정부의 나랏님들이 그렇게 만들겠답니다. 관광활성화와 자연보호를 위해서라네요. 올라가는 길은 막아 자연은 살리겠지만 정작 자연보호가 더 필요한 정상부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광용’으로 개방시키는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등산로가 있는 사면은 몇 년 묵혀두면 비교적 쉽게 복원되는 반면에 날씨가 변화무쌍!! 한 정상부위는 한번 망가지면 좀처럼 복원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요즘의 등산 경향을 볼 때 절대 사람들은 나랏님들이 원하는 대로 케이블카만 타고 올라가 다시 타고 내려오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기존의 등산로를 폐쇄하는데 엄청난 진통이 따를게 분명하구요. 많이 망가진 등산로는 등산객을 적정수준으로 제한해서 보호할 필요는 있습니다만, 그 대안으로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은 절대 아니죠.

굳이 관광자원으로 이용을 하더라도, 순수한 자연이 지켜졌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지, 망가지고 난 후에는 사람들은 찾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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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가치를 가격으로 매기는 사람들
과정을 건너뛰고 결과만 보려하는 사람들
자연보전 구역을 유원지로 전락시키려는 사람들로부터 국립공원을 지켜주십시오.
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건설되는 것을 막아주십시오.

환경부는 5월 1일 자연공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자연보존지구 내 케이블카 거리규정을 2km에서 5km로, 케이블카 정류장 높이를 9m에서 15m로 완화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원지에나 어울릴 각종 시설들을 공원시설에 추가하였고, 생태관광사업 육성·지원이라는 탈을 씌워 국립공원을 아예 관광지로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은 우리나라 국토면적의 3.9%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땅덩이 가운데 자연생태와 역사문화를 보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핵심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것이지요. 국립공원제도를 만들고 세계적으로 국립공원을 제일 먼저 지정한 미국의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1990년대까지 케이블카 바람이 불던 일본의 자연공원들도 지금은 케이블카를 건설하려는 곳이 없으며 오히려 철거하는 추세입니다. 만약 환경부안대로 자연공원법이 개정되면 지리산국립공원 천왕봉(제석봉), 설악산국립공원 대청봉 주변에까지 케이블카가 건설될 것입니다.

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세워진다면 우리들 모두는 돈으로 얻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잃을 것입니다. 국립공원으로서의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정상으로서의 존엄성이나 외경심, 어쩌다 눈에 띄던 짐승들마저 사라질 것입니다. 야생동물들의 삶은 뿌리 채 뽑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죽은 산으로 바뀔 것입니다.

산풀꽃을 비롯한 모든 생명의 삶터이며 더불어 살아가야할 산으로서의 가치는 사라지고 오직 돈벌이 대상으로서 유원지만 남게될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산을 오르는 과정이 없이 정상이라는 결과만 보는 어른들의 방식을 그대로 배우겠지요. 자연의 가치를 가격으로 매기는 사람들, 과정을 건너뛰고 결과만 보려하는 사람들, 자연보전지역을 유원지로 전락시키려는 사람들로부터 국립공원을 지켜주십시오. 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건설되는 것을 막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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