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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 찬양 일색, 울진 원자력 발전소 홍보관

도시를 떠나는 꿈

by 채색 2013. 1. 2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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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의 북면은 내가 본 ‘면’ 소재지 중 가장 신기한 곳이다. 웬만한 ‘읍내’보다 상업이 훨씬 더 발달해 있었다. 특히나 입구에 있던 성당과 교회들은 ‘면’답지 않았다. 이유야 ‘추측’할 것도 없이 ‘울진원자력발전소’때문이다.

마침 북면에 들어간 때가 출근시간. 사원아파트에서 나오는 차들이나 걷는 사람들이나 모두가 핵발전소 방향으로 갔다. 마치 대도시 외곽의 소도심을 떠올리게 했다. 갖가지 식품체인점을 비롯하여 술집, 모텔, 대형 슈퍼마켓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게다가 커피를 볶는 집까지. 아이러니하게도 밀집된 상업시설들과 어우러져 있는 건 ‘학원’들이었다.

삼척방면에서 북면으로 들어가는 길. 여느 '면' 소재지와는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설치된 듯한 방사성 현황 전광판


멀리서 바라본 울진 핵발전소


하루 전 들렸던 삼척의 원덕읍보다 면적은 작아도 훨씬 ‘도시’스러웠다. 원덕읍에서 보았던 그 수많은 현수막들이 모르긴 몰라도 이런 모습을 원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다들, 도시에서 사는 것처럼 살고 싶지 않은가. 활기와 편리가 넘치는, 보통사람들이 상상하는 그런 도시 말이다.

마을 끝에는 거대한 전광판이 서 있었다. 표시되는 정보들이 이곳이 그저 ‘도시를 닮은’ 곳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이후 익숙해진 단위 μSv로 표현된 숫자들이 나열되었다. ‘매화초교 0.11μSv/h, 궁촌초교 0.13μSv/h’라는 식이다. 넘어가는 화면 중에는 울진 핵발전소가 가동 중인지 아닌지 여부도 녹색불과 빨간불로 표시하고 있었다.

전혀 녹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주 최근에 설치된 것 같았다. 얼마 전 폭발위기를 넘겼던 고리1호기를 생각하면 벌써 설치됐어야 하는 시설이었다. 새로 설치된 저 전광판을 매일같이 바라보는 이 지역 주민들은 과연, 안심 할까? 불안해할까? 궁금했다.

북면 끝에 이르자 몇몇 아주머니들이 수영가방을 들고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아마도 핵발전소에서 운영하는 ‘스포츠센터’가 있나했다. 역시나 입구 왼편에 ‘울진원자력스포츠센터’가 있었다. 울진 분의 얘기를 듣자하니 유일한 스포츠센터라고 한다. 나 역시 서울에 있을 땐 구립스포츠센터 수영장에서 열심히 수영을 했었다. 이곳에선 ‘구’에서 해야 할 일을 ‘울진원자력’이 하고 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울진 핵발전소 홍보관


‘울진원자력홍보관’ 앞에 도착해 9시가 되기까지 기다렸다. 크고 말끔한 홍보관을 보고 있자니 갖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도 이런 화려함으로 ‘옳다’고 홍보한다면, 잘 모르는 입장에선 쉽게 넘어갈 것 같았다. 특히나 모든 경험을 빨아들이듯 체득하는 아이들일 경우에는 더더욱.

홍보관 안으로 들어갔을 때, 예상을 뛰어넘는 화려함에 입을 벌리고 말았다. 푸른빛의 네온등으로 신비한 분위기를 갖추고, 깔끔한 디자인과 유명인들(아인슈타인 등)의 얼굴을 크게 그려놓아 신뢰를 얻고 있었다. 또, 투명유리 안으로는 홀로그램으로 표현되는 각종 홍보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홍보관 중앙 큰 홀에는 핵발전소의 거대 축소모형을 만들어놓아 눈을 동그랗게 만들어 주었다. 그 주변으로 핵분열로 전기가 발생되는 과정이라든지, 왜 ‘원자력’이 안전한지 등 꼼꼼하게 설명해 놓았다. 그림과 모형, 소리와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도 이해가 쉽도록 말이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 모형을 꼼꼼히 살펴보며 발전소가 어떤 식으로 구동이 되는지, 핵 연료봉이 어떤 것인지, 바다로 방사능이 빠져나가지는 않는지, 왜 그들이 청청에너지라고 주장하는지, 핵폭탄과 핵발전의 차이는 무엇인지.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 핵발전의 위험성과 관련된 책과 정보들을 많이 접하긴 했지만, 이곳 홍보관처럼 일목요연, 알기 쉽게 설명하진 못했던 것 같았다. 핵에너지 활용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이든 반대하는 사람이든 기본 원리에 대해서라면 이곳 홍보관에서 공부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핵 에너지에 대한 역사를 온갖 멀티미디어를 동원해 설명했다.


원자로 건물. 이 내부가 항상 궁금했는데 이곳에서 궁금증을 화끈하게 풀 수 있었다.


터빈과 냉각수가 흘러가는 구조설명.


다양한 에너지에 대해서 잘 설명해 놓았다.


하지만 홍보관에서 결코 알 수 없는 정보가 있었다. 핵발전의 위험성과 숨겨진 경제성이다. 홍보관 곳곳에는 ‘안전’을 무척이나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무엇으로부터의 안전’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구소련에서 폭발한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어떤 피해를 일으켰는지 설명을 하고서, 한국의 핵발전소는 그렇지 않다고 해야 하는 것이 분명할 텐데, 체르노빌의 ‘체’자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핵발전의 위험성은 아마 상상조차도 못할 것이다. 상상의 단서라도 제공해야할 텐데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왜 비행기가 들이받아도 부서지지 않는 외벽을 만드는 것인지, 지진이나 거대한 쓰나미에도 끄떡없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느 곳에도 설명해놓지 않았다.

냉각수를 바다에 식히는 장치가 결코 멈추지 않도록, 왜 다른 방식의 전력공급장치를 두 가지 이상 두는 것인지도 일언반구도 없었다. 만약 그곳에 ‘만일 전력공급장치가 일시에 고장이 나 냉각수를 식히지 못한다면, 터빈을 돌리는 수증기의 급격한 팽창으로 비행기가 들이받아도 부서지지 않는 외벽마저도 뚫고 폭발 할 수 있다. 


그 폭발로 인해 울진일대는 수십만 년간 아무것도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되며, 대한민국은 방사능 오염으로 수십 년 동안 수십만 또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백혈병이나 갑상선암으로 고통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일본, 러시아보다 기술이 앞서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해 놓는다면 어떨까?

아직까지 인공위성하나 자국기술력만으로는 쏘아 올리지 못하는 나라가 우주를 맘대로 오가는 미국이나 러시아보다 기술이 뛰어나다고 무조건 믿으라고 하는 건 무슨 논리인가. 끔찍한 결과를 낳은 스리마일 핵발전소와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고 모두 그 나라에서 일어났다. 게다가 지진에 대한 대비라면 세계최고 수준의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했다.

'원자력'발전에 대한 안전성을 강조한 설명. '원전이야말로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평화적 에너지'라면 왜 후쿠시마 일대는 사람의 접근도 통제할까?

화석연료를 대체할 최선의 대안이 '원자력'이라고 설명. 우리는 에너지의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생활의 대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답답했다. 핵발전의 찬양 일색인 이곳에서 아이들은 무얼 배우고 갈까. 아마 그 이후에는 핵발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사람들을 보고는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게다가 홍보관 끝에 있는 작은 영화관에선 ‘원자력은 지구를 살린다’는 식의 영상이 나왔다. 전면에 배치된 세 개의 스크린과 그 바닥과 천장이 거울로 된 작지만 무척이나 화려한 곳이었다. 멋진 음악과 어우러진 ‘형이상학적’인 영상은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복잡한 음악과 영상 중심에는 짧은 문장들이 쉴 새 없이 나타났다. ‘청정환경, 그 이면에 녹색에너지 원자력이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시작해 ‘푸른 지구로 회복을 향하여’, ‘지켜져야 할 대자연’, ‘우리가 살고, 후손이 살 곳’, ‘지구는 살아있는 생명체’, ‘지구가 살아야 인류가 산다’ 등 누가 들으면 대단한 생태주의자가 만든 것 같은 문장이 나오다 마지막엔 ‘녹색에너지 한수원이 만들어 갑니다’로 마무리 했다.

인공방사선이 자연방사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설명. 우리가 걱정하는건 '평시'가 아니라 '사고'가 났을 때다.


중.저준위 방사선 폐기물을 이렇게 밀봉해 지하통로 등에 보관한다. 하지만 고준위 방사선 폐기물은 아직까지 임시보관하고 있다.










홍보 동영상은 엄청나게 화려했다. 홍보의 핵심은 '핵발전=자연'이라는 것이다. 푸른지구의 회복, 깨끗한 환경, 지구는 살아있는 생명체... 지구가 살려면 높은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대안에너지'로 핵발전을 할 것이 아니라 소비를 줄이고 자연과 닮은 소박한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방사능은, 정확하게 인간들이 발생시킨 핵에너지는 생명체에게 노출이 되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근본을 흔들어 놓는다. 심지어 방사능 기술의 최고 선구자로써 노벨상을 두 개나 받은 ‘퀴리부인’도 방사능으로 인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안전하다’고 하지만 바로 작년에 이웃나라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단지 발전할 때에만 이산화탄소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정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게다가 지금의 소비중심의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은, 단지 에너지 생산만 핵으로 하는 것이지 ‘소비재’를 만들 때 파괴되는 건 그대로 두겠다는 심보다. 절대 ‘살아있는 지구’를 위한 발전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핵발전소의 위험성은 석탄발전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위험성보다 훨씬 높다.

또한, 기후변화나 동물들의 대규모 멸종 등의 근본원인이 단지 이산화탄소의 증가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간과하고 있다. 사람들의 과도한 소유욕, 편의욕, 권력욕 등 각종 욕심으로 촉발됐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나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고 조화롭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을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

홍보관을 빠져나오며 시계를 보니 무려 한 시간이나 그곳에 있었다. 어찌나 생각할거리가 많던지. 아마 내 인생 최장 홍보관 구경시간이 된 것 같다. 입구에는 두 대의 대형버스가 관광객을 태우고 왔다. 그들은 홍보관에서 어떤 설명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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