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농사지을 땅 사려다 계약금만 날린 웃지못할 사연

귀농/귀촌 정보

by 채색 2013. 1. 14. 07:33

본문

추천은 블로거를 힘나게 합니다. 꾹 눌러주고 읽는 센스~



덤벙대는 성격 탓일 겁니다. 또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고요. 다행히 계약금을 반만 날린 것으로 만족해야 할 상황입니다. 누구에게 탓하겠습니까? 저 본인에게 있는거죠. 제가 땅을 사려다가 계약금만 날린 사연을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저의 다른 포스팅에서 서서히 드러내고 있지만, 저는 봉화로 귀농했습니다. 정말 부푼 마음을 갖고, 소박한 꿈을 꾸며 왔습니다. 영화로 치자면, 촌놈이 '서울'로 올라가서 높은 빌딩을 쳐다보며 기대에 찬 표정을 짓는 장면을 떠올리면 되겠습니다. '와~ 내가 이 아름다운 곳에서 살겠구나!'하고 어찌나 기대했던지요.



무지무지하게 힘든 농촌에서 집 구하기


현실은 달랐습니다. 완전 달랐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조언하기를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일단 내려가면 쉽게 '땅도 구하고, 집도 구할 수 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었죠. 아마도 그건 한 5년 전까지의 상황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적당한 시골집 구하기는 진심 어렵고, 좋은 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것 같습니다. '농촌이 비어있어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내려가야 한다'고 들었던 건 대체 어디서 들은 것일까요? 


이따금 나타나는 빈 집은 퇴락의 정도가 상당해 큰 수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실정이더군요. 천 단위가 들어가는 수리에 쉽게 돈을 쓸 사람은 없을 겝니다. 저도 그랬지요. 시골집은 잘 팔지 않는데다 땅과 집의 주인이 달라 집을 임대를 하더라도 평생(또는 몇 년이라도)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잘 안서더군요.


지역 주민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런 집들은 빈 지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힘들거라고 강조하더군요. 그래서 면사무소나 이런 데서도 그런 집은 소개하지 않은 것일테구요.


'아무 마을이나 좋으니까 따지지 말고 일단 그곳에서부터 시작하자'라고 마음 먹었던 것이 싹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가 살고싶은 마을 뿐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이곳 저곳을 둘러봐도, 해당지역 이장님께 물어봐도 "우리마을엔 빈 집이 없어"라는 대답만 들을 뿐이었습니다. 



집 구하기 포기하고, 땅 구하기로 선회

땅부터 사지 말라는 귀농 선배들의 조언


마음을 바꾸어, 정말 위험하게도, 귀농의 선배들이 늘 그러지 말라고 강조해왔건만, 저는 땅부터 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되었습니다. 시골집은 이웃이나 '아는 사람'을 통해 알음알음 거래가 되지만 땅은 좀 달랐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부동산이나 봉화읍내에 있는 여러 부동산에서는 땅을 거래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먼저, 귀농을 하게될 때 땅을 먼저 구입하지 말라는 '귀농 선배'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몇가지 있는 것 같은데, 두가지만 짚어보겠습니다. 


첫번째는, 귀농을 하면 당연히 농사지을 땅을 구하는게 당연하다라고 생각을 할텐데요. 땅을 구하는 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매매'를 통하거나, 둘째는 '임대'를 통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말라'는 건 매매하지 말라는 것이죠. 


일단 시골의 생활은 작은 마을공동체 단위로 이루어집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대끼며 살게되는 것이죠. 그 점에 '선배'들이 강조하는 조언이 들어있는데요. '맞지 않는 사람'이 마을에 있는 경우 인생이 굉장히 피곤해진다는 것입니다.


도시에서의 이웃관계는, 설령 이웃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문을 닫고 교류를 피하면 됩니다. (어쨌든 굉장히 나쁜 형태죠) 그런데 시골에서는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농사일은 자신의 가족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농삿일을 서로 돕는 품앗이가 많이들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돕지 않으면 살기 힘든 곳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적극적으로 돕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땅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땅을 고르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내가 주로 키울 작물이 그 땅에서 잘 자라는지도 알아야 하며, 물이 너무 차거나, 너무 메마른 땅이 아닌가 하는 것도, 또 볕이 잘 드는지, 주변의 땅에서 과도한 농약을 치지는 않는지 등 확인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잘 모르는 초보 귀농인이 알 턱이 없는 것이죠. 


그런 사람은 부동산의 입장에서 보면 등 쳐먹기 좋은 '먹잇감'인 셈이죠. 잘 나가지 않는 땅을 마치 좋은 땅인 것처럼 속여 파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 주인과 짝짝꿍이 맞는다면 여지없이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해서는 안될 땅 계약, 해버리다.


자, 저는 그런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귀농을 꿈꾸면서 여러사람들의 경험담을 읽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을요.


그런데 한번 돌아선 마음은 다시 돌리기 힘들었습니다. 임시 숙소에서의 저녁은 온통 땅을 찾아보는 것으로 채웠습니다. 대부분은 제 수중의 돈(서울의 작은 집 전세를 뺀 것)으로는 '택'도 없었습니다. 땅의 크기도 큰데다 최근 몇 년간 큰 폭으로 올라있었습니다. 귀농인구가 늘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곳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600평정도 되는 땅에 임시숙소로 쓸 수 있는 컨테이너 박스도 있었고, 식수로 가능한 샘물까지 있는게 아닙니까. 가격은 평균가 정도 돼 보였습니다.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상태였죠.


미룰 필요도 없이 다음날 전화를 걸어 땅을 보고 싶다고 했고, 땅을 보러 갔습니다. 전망도 좋을 뿐더러 비포장이긴 해도 길도 있어서 차로 통행이 가능했습니다. 땅 주인도 차를 타고 그곳에 와 있었습니다. 


처음보는 600평은 정말 어마어마해 보였습니다. 땅을 계약한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 꿔 왔던 꿈들이 그곳에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여긴 집을 짓고, 저기선 밭 벼를, 저기다간 콩, 저기다간 고추, 상추, 배추...'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했습니다. 그 땅을 계약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 길에 부동산을 갔습니다. (저는 참 이상한 놈입니다) 하하, 욕을 하셔도 좋습니다. 좀 먹어야죠.


부동산 사장님은 관련 서류를 떼 왔습니다. 등기부 등본, 지적도 등본, 토지대장 같은 것들이었죠. 문제가 없다는 것을 여러가지 짚어가며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전 주인이 매입한 가격이 지금 매매가의 50%도 안되게 적혀져 있었고, 주인은 이 땅을 산 지 1년도 안되는 시점에 파는 상황이었습니다. 


머리속에는 '잘못된 것 같다'는 것이 번뜩번뜩 스쳐지나갔지만, 그렇습니다. 지나만 갔습니다. 계약하는 데엔 약간 불편할 뿐, 하지 않겠다거나 가격을 낮춘다거나 하는 건 없었죠. 대신에 부동산 사장님이 땅 주인에게 가격을 낮추라며 의외로 강하게 나갔습니다. 그것도 참 이상하긴 했죠. 왜냐하면 10%가 넘는(수백만원) 가격을 내리려고 했으니까요. 


삼백만원의 계약금을 걸고 계약을 했습니다. 잔금은 한 달 뒤에 치르기로 했죠. 사건은 며칠 뒤에 일어났습니다. 



내가 계약했었던 땅. 왼쪽 아래의 수로마저도 경계에 들어가 있다. 농사를 짓지 못하는 땅이 그만큼 넓었다.


3m*9m의 컨테이너가 있어서 당분간 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점에 훅 했던 것 같다.




인사하러 간 마을, 마을사람들은 계약파기하라며..


저는 빈 집을 여전히 구하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마침 어느 마을에서 빈집을 여쭈어보다가 제가 땅을 산 마을과 인연이 있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그 마을에 놀러가는 길이라며 괜찮다면 함께 가자고 했죠. 저는 마을에 가서 땅을 샀다고 인사를 가려던 참이어서 정말 잘됐다 싶었습니다. 


그곳에 가니 말린 고추를 정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보였습니다. 곧 내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 집에서 차도 마시고, 밥까지 얻어먹는 따뜻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에게 알렸죠. 땅을 샀다고 말입니다.


마을 사람이라서 그런지 대번에 그곳이 어디인지 알아 들었습니다. 땅의 거래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응원보다는 땅을 잘 못 샀다는 이야길 많이 했습니다. 일단 가격이 시세에 비해 너무 비싸다고 했고, 물이 차는 땅이어서 농사가 힘들다고 했습니다. "나 같음 그 돈 주고 절대 그 땅 안산다."는 말도 서슴없이 했습니다. 


마침 제 짝인 유하는 근처에서 가지농사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집에 온 게 아닙니까. 인연도 참 묘한 인연이었습니다. 유하와 제가 함께 앉아 있으니 더욱 더 재촉했습니다. 계약을 파기하라는 것입니다. 방법까지 세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제 쪽에서 일방적으로 파기하면 계약금을 다 날릴 수도 있으니 다운계약서를 쓰지 않고 계약을 하자고 말하면 백방 그 쪽에서 안하겠다고 할 것이니,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전 주인이 다운계약을 하지 않는다면 양도소득세를 엄청 물어야 한답니다)



계약하지 말라는 땅 계약했다가 관계라도 틀어진다면,


우리 마을에 들어와서 살다보면 좋은 땅 나오니까 걱정하지 말란 말도 했습니다. (물론 걱정하지 않을 만큼 빈집이 있거나 하진 않았죠.) 며칠간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땅도 다시 가보고, 다른 땅도 알아보았습니다. 마을 주민 아저씨들도 계약을 빨리 파기하라고 재촉했습니다.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이, 마을 분들이 계약하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 덜컥 그 땅을 계약해 버리면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정착하자마자 불편한 관계가 생긴다면, 정말 어렵겠다 싶었습니다. 그 땅은 아무래도 계약 파기를 하는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계약금 300만원 중 150만원만 돌려받고 계약파기


부동산 사장님과 통화하여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계약을 파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땅 주인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계약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다운계약을 하지 않으면 계약을 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그럼에도 안된다고 했죠. 아무래도 좋지 않은 땅이어서 계약자가 한참만에 나타난 듯 했습니다.


그 와중에 땅 주인은 마을에 가서 행패를 부렸더군요. 술을 먹은 상태로 '누가 이 땅 사지 말라고 했어!'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여러사람에게 폐를 끼쳤습니다. 마을 주민들께 죄송했습니다. 


결국 계약금을 반만 돌려받는 것으로 합의를 했습니다. 땅 주인은 그 자리에 앉아서 150만원을 벌었습니다. 없는 돈에 그렇게 날려버려 씁쓸했지만, 비싼 수업료를 치뤘다 생각하고 아픈 마음은 잊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그런 실수를 두번 다시는 하지 말아야죠.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