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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생태활동가가 된 사연

도시를 떠나는 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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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유하의 첫번째 글입니다. '나는 나무가 좋다'는 채색과 유하의 공동 블로그랍니다.^^>



대학입학원서를 찢어버리다

18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하는게 당연한 친구들을 보면서
팍팍한 도시를 떠나 자유롭게 세상을 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핑크플로이드의 '벽'에서 학생들이 줄지어 가다 통조림이 되어 나오던 끔찍한 장면처럼 틀에 박힌 교육제도를 따라 제 인생이 남들과 똑같이, 마치 공산품처럼 만들어 지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 학생들이 일렬로 줄지어 걸어가다 거대한 분쇄기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장면  사진=핑크 플로이드의 벽의 한 장면


결국 대학원서 접수 마지막 날 가족과 선생님 모르게 원서를 찢었고, 대학이라는 '당연한' 제도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물
론 그 와중에 가족과 선생님들이...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생략하겠습니다^^

그리고 20살 한 해를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온전히 제 마음대로 말이죠^^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서 인도를 여행했고, 돌아와서는 국내를 여행하다 방과후 공부방에서 부모의 손길이 부족한 아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이런 기쁨도 잠시, 대학교도 안 가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닌 제 앞날을 걱정하며 눈물 흘리시는 어머니의 부탁에 다시 대학입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여행할 생각에 설레이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아 슬프더군요. 그래서 돈도 없고, 입시준비할 마음도 없던 저는 집과 도서관을 오가며 책을 읽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지금까지도 가족들은 제가 입시공부를 하느라 도서관을 들락거린 줄로 압니다^^;)

그때 읽었던 책 한 권이 이후 제 삶의 중심이 되어 지금까지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장일순 선생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쌀 한 톨과 잡초 하나에도 생명과 온 우주가 담겨있고, 위-아래 없이 서로가 도우며 함께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 덕분에 생명과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고 아래로 흐르는 삶, 자연에서의 삶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4년 째 채식만 하는 이유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시민단체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미FTA가 야기한 광우병사태의 뜨거운 소용돌이 속에서 몇 달을 보내게 되면서, 그 즈음부터 육식에 대한 고민이 커졌습니다.

원래 고기를 좋아해서 사람들과 만나거나 술약속이 있을 때는 어김없이 고기집으로 향했는데, 제가 먹는 고기가 안전한지 아닌지를 사회가 보장해 주지 않으니 더 이상 마음편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서 먹는 음식이야 한살림이나 생협 등에서 안전한 먹거리로 선택할 수 있지만,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대부분은 외식을 하기 마련이니까요.

그 즈음 동물들이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 비윤리적인 도살과 공장식 사육, 유통과정의 문제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본 후부터는 동물들의 울음소리와 영상이 떠올라 먹기 힘들었습니다.

고기를 먹는 것이 '불편'해서 자연스럽게 채식만 하게 된 거죠. 그렇다보니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고기뿐만 아니라 많은 양의 우유를 짜내기 위해 성장호르몬을 맞아야 하는 젖소와 좁은 공간 안에서 부리가 잘린채 알만 낳아야 하는 닭의 현실을 깨닫고는 '동물성 식품' 자체를 '식품'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채식이 이제 4년째가 되어가네요...


'자연'스런 삶이 좋아요

채식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채소 그 중에서도 농약을 뿌리지 않은 채소를 찾게 되면서 친환경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쏟게 되었습니다. 나 하나 맛있게 먹고 편하게 살자고 그동안 너무 쉽게 자연을 훼손하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불과 몇 십년 전만해도 이보다 훨씬 불편했어도 잘 살았는데 말이죠...

그렇게 제 생활을 돌이켜보면서 하나씩 찾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일회용생리대를 면생리대로 바꾸고, 볼펜과 일반종이를 재생연필과 재생종이로 바꾸고, 휴지대신 되도록이면 손수건을 사용하고, 샴푸대신 친환경샴푸로 바꾸고, 비누대신 물로만 씻고, 일회용품은 가능하면 안 쓰고...

물론 처음에는 불편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뭐 그렇게 까다롭게 사냐고 핀잔도 줬지만, 자연을 그만 해치고 지켜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도 없었습니다. 또 제 자신부터 실천해야 주위 사람들에게도 자연적인 삶의 필요성을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저에겐 시골에서의 삶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도시의 직장인으로 살면서 날마다 닭장차같은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고, 꽉 막힌 건물들 속에 앉아 서류들을 작성하면서 애써 '오늘을 즐겁게 살자'고 스스로를 북돋기엔 저에게 도시라는 테두리가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도시의 모습은 제가 좋아하는 자연의 모습과도 많이 달랐구요.

그래서 시골에 내려가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작은 채식식당을 차려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이따금 내려와 숨고르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생태적인 삶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제 삶을 통해 보여주고,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생태적인 삶의 즐거움과 소중함을 느낀다면 정말 행복하겠죠? 우선 저부터도 도시에서의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 싶구요^^


내 꿈은 생태활동가

그렇게 시골로 내려갈 계획을 세우던 어느 날, 채색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채색은 저와 마찬가지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던 사람이라 만나면 늘 서로가 꿈꾸는 생태적인 삶과 시골에 내려가는 시기를 얘기할 때가 많았습니다. 서로가 좋아하는 생태관련 서적들도 바꿔 읽어가면서 우리 삶의 더 많은 부분을 생태적으로 바꿔나가자고 서로를 북돋은 셈이죠.

자연 가까이서 자연이 빌려주는 재료로 직접 집을 짓고, 자연농법으로 먹거리를 생산하고, 똥이나 오줌이 아까운 물과 함께 버려지지 않도록 퇴비로 만들고, 가능하면 자연에서의 모습 그대로를 사용하면서 우리가 살다간 흔적이 자연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만 이렇게 산다고 해서 지금의 환경오염이나 자연파괴들이 해결되지는 않기에, 저희의 생태적인 삶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공유해서 사람들과 쉽고 즐겁게 '자연'스러운 변화를 만들어 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생태활동가로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결심을 하고 나니 시골에 빨리 내려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채색과 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시골에 내려가기 전 우리가 살 곳도 알아보고 자연과 마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한 동안 길 위를 걸어다닐 계획입니다. 가족들의 걱정이 신경쓰이기는 하지만, '자발적 거지'를 자청한 생태활동가는 지금의 결정이, 그리고 자연과 더 가까이 할 그 날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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