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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도시를 떠나는 꿈을 선택하다

도시를 떠나는 꿈

by 채색 2011. 12. 28.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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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해야할 기로에 선다. 어떤 결정은 잘했다고 만족할 때도 있지만, 어떤 결정은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잘 된 결정이라도 다른 것을 선택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내 인생에서도 중요한 결정이 몇차례 있었다.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지 않고 공업계 고교에 진학한 일, 4년 6개월의 직업군인 생활, 대학을 그만두고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을 떠난 일 등이다.


대충 봐도 알겠지만 흔히 말하는 '보통의 삶'을 거부하며 그 순간 맘 내키는 쪽으로 결정을 했었다. 이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고 굉장히 만족하며 살고 있다. 다른 결정을 했다면 어떤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돌이키고 싶진 않다.

최근 몇 달동안 두가지의 선택을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환경단체 활동가로 남을 것인가, 생태적인 삶을 사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두가지 모두 '생태'나 '환경'같은 비슷한 주제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환경단체에 계속 남는 것은 적긴하지만 금전적인 지원을 계속받을 수 있고, 다른 삶을 사는 것은 '맨 땅에 헤딩'하는 격이다. 결국 또다시 다소 모험적인 삶으로 보이는 후자를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환경'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높았다. 아마도 '환경'이 유지돼 있던 사회에서 파괴되는 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을 너무 가까이에서 지켜본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군다나 그런 파괴들이 감성이 충만하던 초등학교 시절 일어났다. 10~20분만 걸어가면 나오는 계곡과 들판이 여기저기 널려있었지만 순식간에 다 파괴되었다. 아파트며, 도로며 하는 것들로 다 채워져 버렸다. 흘러내려오던 계곡물은 온데간데 없다. 그 도심에 10m 짜리 폭포가 있었고, 돌만 뒤집으면 가재다 도롱뇽이다 하는 것들이 도망갔었다. 지금의 아이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 되었다.


▲ 1년 반 가까운 유라시아 여행은 나에게 있어 대학을 대신한 일종의 '로드스쿨'이었다. 


1년 반 가까이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찾았다. 바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다. 느리고 땀나는 인생에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자연이 건재한 지역의 사람들 눈빛을 이해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뒤 그 방면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 갈필을 못잡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환경단체'라는 것이 '환경'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게되었고, 녹색연합이라는 단체에 들어가 일하게 된 것이다.

녹색연합에서 일하는 만 3년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건 내가 그간 너무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자연'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어떤 식의 삶이 나에게 좋은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직접 실천하는 모습으로, 누군가는 글로써 가르쳐 주었다. 하나하나 모든게 훌륭한 가르침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배울 때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내 생활은 어떤가하는 고민이었다. 입으로는 '생태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그렇지 않은 걸 발견했을 때는 적잖이 부끄러웠다. 심지어 파괴현장을 돌아보다 현장직원과 맞닥뜨린 상황에서 "당신들은 콘크리트 집에 살지 않아?" 라고 쏘아붙일 땐 "그래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구요" 라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틀에 한 번만 친환경 샴푸로 머리를 감고, 비누칠은 1년이상 하지 않았고, 쓰레기는 철저한 분리수거를 하고, 음식쓰레기는 바짝 말려서 버리고, 텀블러를 항상 가지고 다니며 종이컵을 아끼고, 티슈 대신 손으로 닦고 손을 씻고,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 하지 못할 땐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고, 옷은 거의 사지 않았고, 채식위주의 식사를 하려 노력했고.... 그래도 도시에 살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실천하면서 살았다. 그래도 맘 한 켠에는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바로 아무리 '생태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더라도 직접 생태적으로 살지 않는다면 공허한 외침이라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대변을 물에 씻어 내려버리는 일' 같은 것처럼. 땅에서 나온 것을 먹었다면 땅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것이 '생태적인' 것이다. 땅의 기운을 뺏아왔다면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 그래야 그곳에는 다시 생명이 산다. 지금은 물에 씻어내리고 그것들을 모아 정화하여 강이나 바다에 버린다. (인분은 비료의 재료로 쓰지 않는 것으로 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될 수록 '효과가 센' 화학비료가 늘어날 것임은 자명하다. 

우리 옛 선조들은 아메리카 인디언 못지않게 생태적인 삶을 살았다. 주변을 둘러싼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망가뜨리지 않았다. (제발 전쟁 전후의 모습을 상상하지 말라) 그래서 쓰레기가 없었다. 다시말해 그곳에서 생산한 것들은 그곳에서 대부분 소비가 되었다. 이런게 생태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내가 선택하게 될 삶이 앞서 말한 그런 '생태적인 삶'이다. 안타까운 것은 내가 '옛날사람'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런 삶을 모른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도시에 살고 있다. 농사도 일체 모르고, 집도 지을 줄 모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이 혀를 차며 '쯧 쯧' 거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이 방향으로 선택한 것이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생태적인 삶으로 돌아가는지 명확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삶을 버리고 떠난다.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월급 꼬박 꼬박 받으면서 그냥 살지 니는 도대체 아가 와그렇노?" 라고 하는 어머니의 말씀이 귀에 윙윙거린다. 아무리 천천히 떠난다 할지라도 우여곡절은 많을 것 같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겠지. 이미 사직서도 냈고, 늘 해왔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녔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일단 떠벌려야 번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블로그를 통해 만인에게 떠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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