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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중 이란경찰들에게 몰매 맞았습니다.

달려라자전거

by 채색 2009. 7. 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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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시라즈의 시장 풍경>>


요즘 이란 안에서 부정선거에 대한 강력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데요. 이란에서의 다소 특별한 경험이 있는 탓에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이란에서 겪은 일들이 많이 생각나구요. 여행자들이 가장 좋아하면서도 가장 싫어하는... 그 괴상한 아이러니 속에 있는 이란. 그 때 겪은 두가지 여행담을 하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경찰에게 몰매 맞은 사건입니다.


파키스탄의 힘든 여정 뒤 이란입국

파키스탄 사막을 어찌 저찌 하여 건너갔습니다. 파키스탄의 퀘타라고 하는 도시에서 이란 국경 타프탄 까지. 이 지역은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와 가까운 ‘탈레반’ 활동지역입니다. 제가 여행한 후 세달 뒤에 그 유명한 납치사건이 일어났었죠. 여튼 그런 위험한 지역을 여 행 했다는게 좀 거시기 하지만 굉장히 고생하곤 결국 지나긴 했습니다.

타프탄에는 오전 9시 정도에 도착했습니다. 파키스탄을 건널 때 너무나 위험했기 때문에 도중에 히치하이킹을 했었죠. 그래서 화물트럭을 타고 그곳 타프탄까지 밤을 세워 간 것입니다. 기사님께 너무 고마워서 가지고 있던 파키스탄 루피를 드리려고 했지만 거절당하고 되려 우유를 선물 받았지요.

주변 슈퍼마켓에서 환전을 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쳐주는 것 같아 기분이 업! 긴장감을 가지고 파키스탄 출입국 사무소에 갔고, 그 다음 이란으로 넘어갔습니다. 파키스탄 출입국 사무소 직원보고 ‘파키스탄 정말 좋았다!!’ 뭐 이런 얘길 했던 것 같네요.

파키스탄과 다르게 이란 출입국 사무소는 대단히 깨끗하고 좋은 시설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소 썰렁한 분위기. 입국 도장을 찍는 곳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냥 갈 수 없어 잠시 기다리니 온 몸이 검정색 차도르로 가려진 여자분이 나타났습니다. 여권을 꺼내줬더니 대번에 입국 도장을 찍어줬습니다. 다음은 세관검사. 검사대 앞으로 가서 기다렸습니다. 자전거를 옆에 세워두고 주변을 돌아봐도 직원은 없고, 의자에 앉아 TV 보는 몇몇 여행자들만 있었습니다.

저쪽 허공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고, ‘살람~’ 하면서 인사말을 던졌지만... 그러다 저쪽 구석에서 정체를 모를 어떤 사람이 도장을 찍었냐는 시늉을 해보이고, 그렇다고 했더니 바깥문을 향해 나가라고 손짓했습니다. 헐... 그 무서운 나라 이란에 입국하는데 이렇게 간단?히 입국절차가 끝나다니!! 이란은 몇 년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나라였고, 여행을 처음 출발할 때부터 이란의 여행안내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티베트 이후 최고 기대했던 나라였습니다.


검문소에서 5시간 잡혀있다.

국경에서부터 첫 번째 대도시 자해단 까지는 약 80km, 파키스탄 사막이 위험한 것처럼 이곳도 마찬가지 이유로 위험했습니다. 그래서 보통의 여행자는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습니다. 그러나 저는 경찰의 경자도 보지 못하고 한참을 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다 검문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군인들을 저를 세우곤 경찰이 동행하지 않으면 갈 수 없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알겠다고, 그러겠다고 표시를 하고는 구석에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한시간, 두시간이 흘렀습니다. 군인에게 경찰에게 전화를 해달라는 시늉을 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지만 그 후로 두시간동안 또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전날 50도에 육박하는 사막 길을 100km 넘게 달리고, 총을 든 사람을 만났고, 히치를 해서 밤새 트럭을 타 그곳에 왔습니다. 배가 고픈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피곤하고 빨리 쉬고 싶었습니다.

젊은 군인 중 한 명이 저를 조롱하는 듯한 말투로 뭔가 이야기 했습니다. 화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생지랄’을 했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죠. 거의 싸울 뻔 했습니다. 거기 군인들도 그제서야 좀 딱해보였는지 빈 덤프트럭을 잡곤 저를 태웠습니다. 자전거로는 가지 못하게 했구요.


자해단 입성 그리고 교통사고

도중에 또 검문소를 만나 잠시 검색은 당했지만 해가 지기 조금 전에 자해단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여행 안내서를 보고 숙소가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주변엔 온통 사막이었지만 도시는 나무도 많고 참 깔끔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신기한 풍경으로 주유소 주변에 기름을 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주유소는 줄서서 주유를 하구요. 아마도 이란의 싼 기름을 파키스탄으로 소규모 밀거래를 하는게 아닌가 싶더군요.

길 가에 서있는 어떤 사람이 제 뒤통수를 때리려는 바람에, 안그래도 민감해져 있는 상태에서 한바탕 할 뻔 했습니다. 주변 사람이 말리지 않았다면 말이죠. 긴장감을 가지고 계속 진행했습니다. 숙소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 유턴을 하고 조금만 더 가면 숙소였습니다. 그래서 유턴을 하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유턴을 하고는 살짝 주행했는데...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습니다. 하늘이 잠깐 정지되었던 것 같네요. 잠시 뒤 등으로 충격이 느껴졌습니다. 자동차 추돌 사고가 난 것이지요. 제 뒤에 오던 차량이 저를 박아버렸습니다. 자전거는 앞쪽 멀리에 나동그라지고 저는 하늘을 날아 자동차 본네트 위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닥으로 굴렀습니다. 눈을 떴더니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순간적으로 이동시켰는지 꽤 많은 관객?들이 있었습니다. 벌떡 일어나 자전거를 살폈습니다. 뒷바퀴는 완전 찌그러지고, 가방 걸이는 부러져 버렸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자전거를 어떻게 처리해야 되나 그 생각이 나더군요. 운전자는 그냥 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폴리스, 폴리스’ 하며 외쳤죠. 사람들은 벌써 ‘폴리스’와 ‘앰뷸런스’를 호출한 상태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마자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몸은 괜찮으니 돌려보냈습니다. 조금 후 경찰이 도착했습니다.


경찰서에서의 침묵

이란은 영어가 안통하기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나 일본도 마찬가지긴 하지만요. 교통사고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제가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안되더군요. 모두다 ‘파르시’(이란어, 페르시아어)로만 얘기할 뿐. (으아. 시바 겁나 난감하네) 그들은 자전거를 고치려고 주변의 자전거 방을 찾았습니다. 한 평 남짓한 아주작은 자전거 수리방이었죠. 제 자전거를 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전거 수리비 정도는 보상을 받아야겠다 싶어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서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죠. 역시나 저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입구 로비 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는데 그 중 절반 정도가 저를 보고는 ‘미스터 친니’ 라고 했습니다. 중국사람이냐는 거죠.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고 ‘꼬레-’라고 말했죠. 하지만 국적을 묻는게 아닌 듯한 뉘앙스 였습니다. 놀리는 거였죠.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나 배가 고픈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몇일동안 밀가루로 만든 짜파티만 먹었고, 또 밤도 새고 근 10시간동안 음료수와 물 이외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한시간, 두시간... 시간은 훌쩍훌쩍 넘어갔습니다. 제게 주는 관심이라고는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놀림 뿐이었죠. 밤 9시 정도가 되니 제 자전거를 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경찰관계자는 저에게 경찰서에서 잘거냐 호텔에서 잘거냐 하는 것을 물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경찰서에서 잘 이유가 없으므로 호텔을 가겠다 했습니다.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배가 고팠을 뿐인데.

어두워 진 이후에는 경찰서 마당을 배회했습니다. 배가 넘 고팠죠. 빨리 숙소를 잡고 쉬고 싶었습니다. 더 늦어지면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잠시 슈퍼에 가 먹을 것을 좀 사가지고 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주변에서 가장 높아보이는 직위를 가진 사람에게 한손으론 배를 쥐고 한손으로는 먹는 시늉을 하며 바깥에 나갔다 오겠다 했습니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도무지 왜 안되는지 이해가 안됐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고개를 젓습니다. 정말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엔 경찰서 앞 슈퍼까지 스스로 다녀오기로 맘먹었습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제 자전거를 박은 사람은 이미 집에 돌아간 상태입니다. 그래서 마당을 벗어나 출구로 향했습니다.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가지말라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뒤돌아서서 배가 고프다는 시늉을 다시한번 크~~게 했습니다. 출구의 경찰이 잠깐 막았습니다. 하지만 화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민 상태였기에 그냥 나갔습니다. 배고프다는 시늉도 잊지 않았지요.

<<세상의 중심이라 일컬어지는 에스파한 이맘광장>>


경찰 4명에게 몰매맞다.

출구에서 저를 막아섰던 경찰이 쫓아왔습니다. 제가 빠른 걸음으로 50m 쯤 걸었을까요? 슈퍼마켓은 경찰서의 담이 끝나는 지점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70~80m 지점, 즉 20~30m만 더 가면 되는 곳에 있었죠. 저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뿌리쳤습니다. 속은 완전히 비어있어서 정말 정말로 뱃가죽이 등가죽과 합체한 듯한 상태였습니다.

배가 고프긴 했어도 뿌리칠 힘은 있었는지 힘으로는 그가 밀렸습니다. 20여초 실랑이를 벌였을까요?? 3명의 경찰이 더 달려왔습니다. 그리곤 오자마자 저를 패기 시작하더군요. 4명의 경찰이 발로 차고, 손과 주먹으로 1분간 때렸습니다. 그들은 20대 초반의 젊은 사람들이었죠. 우리나라의 의경제도 같은 것으로 입대한 '군인'이었습니다. 반격을 할까 하다가 총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냥 단념했습니다. 솔직히 그렇게 아픈 것은 아니었죠.

나이가 많은 경찰이 달려와 그들을 말렸습니다. 저는 정말 화가났죠. 맞은 것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지만 맞을 이유가 없었기에 짜증이 났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들을 뿌리치고 경찰서로 달려갔습니다. 늙고 배나온, 계급장이 화려한 사람마다 멱살을 쥐곤 "Boss??" 라고 외쳤습니다. 경찰서장을 찾았던 것이죠. 하지만 그 중 경찰서장은 없었습니다.


전화를 찾아서...

폭력 사태가 있은 뒤, 10여분도 안되어 바로 호텔로 태워줬습니다. 11시가 넘어 도착하곤, 늦은 첫 이란식 식사를 했습니다. T.T 위 속이 너무 비어있어서 들어가는지 마는지... 바로 전화를 해야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럴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해야겠다 생각하곤 잠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경찰이 데리러 오기전 전화를 하러 나갔습니다. 대사관이나 외통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죠. 호텔 주변엔 전화기가 있었지만 모두 공중전화라 전화카드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은행을 봤고, 환전도 할겸 해서 은행으로 들어갔습니다. 백달러짜리 두장을 환전 했는데 엄청난 돈이 돌아왔습니다. 왠지 부자가 된 듯한... 그러고 은행 직원에게 전화를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외통부에 전화하는 것은 수신자 부담이어서 돈이 안드니까 해달라고 했죠. 그러나 불행히 은행의 모든 전화기는 국제전화 라인이 연결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직원은 친절하게 전화를 하기 위해선 어디를 가야하고... 뭐 그런 정보들을 적어주었습니다. 택시 아저씨께 보여주라구요. 그걸 받아들고는 다시 호텔로 왔습니다. 경찰이 오기로 한 시각이 다되었기 때문이죠. 데리러 온 경찰과 아침식사를 함께하곤, 그 쪽지를 보여줬습니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바로 내주었습니다.

대사관의 전화번호를 찾았습니다. -.-a 경찰서에 놔두고 온 가방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한국 외통부 영사콜센터로 전화를 했지요. 그러나 그 핸드폰 역시 국제전화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법원의 판사, I think no problem

전날의 교통사고 건을 처리하기 위해 법원으로 갔습니다. 괴상하게도 저를 친 운전자 아저씨는 놔두고 저만 데려가더군요. 하여튼 법원에 도착해 검색을 받았습니다. 검색을 하던 청년은 저의 양 유두를 꼭 쥐었다 놓는게 아니겠습니까.!! 하도 어이가 없어서 팔로 그를 확 밀치곤 이마로 그의 옥수수를 깨부시려고 하려는데 함께간 경찰이 말렸습니다. 다행이죠.

작은 사무실 같은데서 판사와 마주 앉았습니다. 저는 어제 있었던 사고는 괜찮습니다. 보상을 안받아도 됩니다. 그러나 폭력사건에 대해서는 참고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라고 어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판사는 영어가 가능했거든요. 제 얘기를 다 듣고 판사 입에서 나온 말은 가관이었죠. 'I think no problem' 이라고 말했습니다.

'니 잘못이다' 라는 뜻이겠죠. 절망이었습니다. 빨리 대사관에 전화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우울했죠.



경찰서장, UN으로 가봐라~

다시 경찰서로 돌아왔습니다. 마침 영어가 가능한 사람이 와 있더군요. 그리고 그와 함께 경찰서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권위적 분위기의 서장실에서 그와 함께 차를 마셨습니다. 어제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지요. 마치 자신은 타인이라도 되는 듯 UN에 가서 해결을 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때린 사람들의 사과면 충분한 일이거든요.

저를 데려갈 사람들이 준비하는 동안, 어제 저를 때린 녀석들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곤 어디론가 끌고 가더군요. 바로 식당이었습니다. 어제 배가 많이 고팠다면서?? 하는 눈치로 밥을 권했습니다. ㅎㅎㅎ... 어느정도 양심은 있는 녀석들이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 때는 배가 별로 안고팠기에 거절하고 나왔습니다.

그 길로 UN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도착한 UN 사무소는 UN 난민 센터였습니다. Refugee centre 였죠.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관계자를 만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역시 안되는 건 안되는 일입니다.


테헤란 행 결정, 영사관 왈 이란은 국가적인 일도 허술...

결국 테헤란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사관에 가서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죠. 경찰들은 구역이 바뀔 때마다 상대편 경찰에게 저를 넘겨주는 식으로 터미날에 데려다 줬습니다. 망가진 자전거 때문에 조금 애를 먹었죠. 자해단에서 테헤란까지는 26시간정도 소요, 2400km에 달하는 아주 먼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버스가격은 불과 9000투망. 우리돈 9천원입니다. 그렇다고 인도나 파키스탄과 같은 불편한 버스가 아니라 벤츠, 볼보 같은 좀 편한 버스였죠. 

마침 테헤란의 한국 대사관의 영사관은 휴가중이라 자리에 없었습니다. 행정관과 면담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사를 만나야 해결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자해단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히 담은 글을 넘기곤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5일을 기다려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만나자 마자 죄송하다는 말부터 했습니다. 자신이 대신 사과할테니 화 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인즉, 이란은 국가적인 큰 일 처리에 있어서도 아주 허술하게 한다더군요. 만약에 제가 이란을 상대로 이 사건 해결을 보자면 6개월로도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저만 더 피해를 보게 될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절망적이었죠. 하지만 그의 사과?로 많이 풀렸습니다. 또, 그는 밥도 사주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주었구요. 고마웠습니다. 여행 당시에는 이란에 대한 증오를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친절한 사람도 여럿 봤습니다. 또 X같은 놈도 많이 봤고요. 물론 다른 여행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란은 정말 최고!! 라고 합니다.ㅎㅎ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a

요즘 이란은 너무 힘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경찰들... 국가권력 때문이겠죠. 우리나라도 힘들긴 하지만 이란만 하겠습니까. 하여튼 뭐든 독재는 좋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꼭 맞다고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한사람만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는 더더욱 볼 수 없습니다. 서로간의 많은 소통이 필요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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