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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를 치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지구를 지켜라

by 채색 2009. 6. 1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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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10시가 다 된 시간. 경남 양산에서 볼 일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1번 고속도로를 타고 100km 정도의 속도를 내고 있었지요. 경사진 언덕길을 올라 약간 굽어진 길을 돌았습니다. 키작은 고라니 한 마리가 도로 중앙에서 전조등을 한 몸에 받으며 서 있었습니다. 순간 갓길 쪽으로 핸들을 돌리고 속도를 늦추었지만 피하기엔 늦었습니다. 자동차 왼쪽 범퍼 쪽에서 ‘툭’하는 둔탁한 음이 들렸고, 그 진동마저 느꼈습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현장으로 걸어갔습니다.

갓길에는 다른 한 마리의 고라니가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언덕으로 올라가길 간절히 바라며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었는데, 마주오는 차량의 전조등에 그의 실루엣이 뚜렷히 나타났습니다. 도로 중앙으로 들어간 것이었죠. 우리는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거대한 트럭이 ‘엥’하는 소리를 내며 빠른속도로 다가왔고 조금전 들었던 ‘툭’하는 소리를 다시 들어야했습니다. 도로 중앙에 있던 그는 갓길, 우리의 앞으로 튕겨져 왔습니다. 손전등으로 그의 모습을 비추었습니다. 온몸을 바둥거리며 마지막 몸부림을 쳤습니다.

눈물이 핑 돌더군요. 아... 다른 한 마리를 찾아 더 걸어갔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차량들이 우리마저 칠까봐 겁났습니다. 우연히 고속도로로 들어서게 된 고라니들의 공포가 와 닿았습니다. 질주하는 차들을 보고 어찌할 줄 모르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도로공사에 전화를 걸어 사고사실을 알린 뒤 잘 부탁드린다고 했습니다. 바로 순찰차를 보내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삶 터 근처에다 묻어주는 것이 맞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殺동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고라니에게.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오늘 당신을 본 순간 너무 놀랐습니다. 도로위에서 우리를 보고 놀라는 당신을 피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미안합니다.

지금까지 당신의 종족을 본 것은 승학산 꼭데기 멀리에서 뿐입니다. 저의 발소리에 놀라 달아나는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 때 그는 저를 살짝 쳐다보고는 반대방향으로 뛰어갔었죠. 제 발소리 마저도 그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죠. 사슴 계열의 동물들은 소리에 민감하다고 들었습니다. 자주 가는 산에도, 도심에도 다른 야생포유류가 살고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했고 기뻤습니다. 인간들 가까운 곳에는 야생포유류는 거의 없어졌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살아있는게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당신을 치었습니다.

당신은 어디를 가는 길이었을까요? 혹시 부모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을까요?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서였을까요? 가던길에 갑자기 나타난 도로, 너무나 큰 소리들이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지금까지 살며 처음일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당신이 죽기전 본 것들이 인간들이 타고다니는 자동차라고 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아주 큰 것까지 다양합니다. 산을 깎고 흙을 쌓아 반듯하고 곧게 길을 만들어놓고 그 위를 달립니다. 얼마나 빠른지 수백키로의 거리를 불과 몇시간만에 갈 수 있습니다. 당신들 종족이 평소 숲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향기는 우리 인간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빠르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인간들도 조금씩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당신들 존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보호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빠른’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우세하지만 결국에는 당신들과 함께 사는 세상이 훨씬 좋은 세상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게 언제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이 세상은 돌고 돕니다. 인간들은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죽으면 다른 생명으로 환생한다고도 합니다. 저는 당신이 또다른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른 생으로 태어난다면, 저를... 그리고 인간들을 부디 용서하시고 노력을 지켜봐 주십시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T.T

다음 생에서는 인간과 연이 없는 생명으로 다시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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