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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보호팻말 달아놓고 소나무숲 파괴하는 자들

도시를 떠나는 꿈

by 채색 2012. 12. 3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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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에는 유난히 소나무가 많다. 예전에 ‘해풍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가꾸었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해안 개발 때문에 많이 사라진 탓인지 남아있는 소나무 숲 곳곳에는 ‘송림보호’라는 팻말과 함께 울타리가 쳐 져 있었다. 경고문이 붙어있는 곳도 있었다. ‘야영금지, 취사금지’ 따위다.


의식이 부족할 때는 무분별한 개발을 했겠지만 소중함을 깨닫고 난 뒤, 비록 늦었을지라도 그 때부터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건 잘 하는 일이다. 우리가 그 소나무 숲에서 잠을 잘 수 없더라도, 밥을 해먹을 수 없더라도. 사실, 21살 때 혼자 한 도보여행에선 해안송림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긴 했었다.


백사장이 발달한 곳에는 늘 송림도 함께 있었다. 아마 바다, 백사장,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건 어디나 비슷했다. 개발이 꽤나 진행된 곳이라도 건물 옆에는 소나무들이 많았다. 소나무 숲을 일정부분 깎고 들어간 것이다. 그래도 남아있는 곳에는 언제나 ‘송림보호’같은 팻말이 붙어 있어 다행이었다.


그런데 맹방해수욕장에서 그 ‘보호’ 표지판이 말뿐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보호지역을 피해 잠 잘 자리를 찾고 있을 때, 보호 표지판 뒤로 소나무들이 송두리째 깎여나가고 없는 걸 발견했다. 분명 송림이라 함은 소나무 숲을 뜻하고, 보호라는 말은 지킨다는 뜻일 텐데, 팻말은 그저 허수아비였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며 온갖 거짓으로 일관된 '그들'을 생각해보면 '송림'과 '소나무숲'이 다르다고 주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안쪽으로 가 보았다. 마을과 가까운 곳에는 골프장이 있었고, 그 옆 숲이 파괴된 것이다. 길이는 못해도 삼백여 미터, 폭은 4~50m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느낌상 골프장을 확대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맹방해수욕장의 해안도로와 데크시설. 해안가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해풍과 해일 등 각종 자연재해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역할이다. 마을 사람들이 가꾸었다.


동해안에서 흔히 보이는 송림보호 표지판. 그런데 그 뒤가 휑~하다.


소나무가 다 베어지고 맨 땅이 드러나있다.



숲 끝에는 최근 신축된 것 같은 큰 건물이 하나 있었다. 자세히 보니 씨스포빌 리조트다. 그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해서 그 쪽으로 걸어갔다. 건물 옆에는 축구장 크기보다 좀 더 큰 부지가 맨땅인 상태로 놀고 있었다. 운동장이든, 건물이든 뭐든 들어설 것 같았다.


‘산불조심’ 차량을 타고 다니던 할아버지 두 분도 내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아마 걸어가는 우릴 보고 내린 것 같았다. 그들의 눈 빛 속에는 깊은 한 숨이 들어있었다. “어르신, 여기가 왜 이렇게 된 거에요?” 거두절미하고 궁금증을 털어놓았다. 


“여기가 다 소나무 숲이었어요. 저기 씨스포빌에서 다 밀어버렸지. 골프장 짓는다고.” 그의 말을 듣자마자 자동적으로 “아…….”하는 한숨이 나왔다. 내가 대강 머릿속으로 그려봤던 시나리오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가 말을 잇기를 “원래 허가 받았던 것보다 뭘 더 심하게 해서 공사가 중단이 됐다 하더라고. 방송에도 몇 번 나왔으니 거기 찾아보면 될 거요.”


검색해보니 모 방송국 뉴스의 기사가 검색이 되었다. ‘최소수령 50년이 넘는 소나무가 1천 그루 이상 잘려나갔다. 60년 동안 주민들이 직접 가꾼 소나무 숲이었다. 83년 4m 높이의 쓰나미가 밀려왔을 때도 이 숲 덕분에 안전했다. 삼척시는 1등급이던 식생등급을 업체의 요청에 따라 3등급으로 낮추었고, 해당 숲을 시세의 1/3도 안 되는 가격으로 업체에 팔았다. ‘소나무를 옮겨 심어 방풍림으로 활용하라’라는 조건도 무시했다.’는 내용이었다.



잘려나간 소나무 잔해들 뒤로 골프장이 보인다.


무엇을 지으려했는지 넓게 터를 닦은 자리 뒤로 시포빌 리조트 건물이 보인다. 이 넓은 땅이 모두 소나무 숲이었음은 주민을 통해 확인했다.


최소수령 50년이 넘는 소나무가 1천그루 이상 잘려나간 현장이다. 삼척시는 1등급이던 식생등급을 개발을 위해 3등급으로 낮추었다. 우리나라 법으로는 이런 막무가내 개발 절대 불가능하다. 무능한 공무원들이 다 망치고 있는 셈이다.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주민들은 바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나무를 적극적으로 심었다. 그런데 관할 행정청인 삼척시는 주민들의 노력과 안전은 배제한 채 시유지를 사기업에게 헐값으로 매각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주민들의 노력과 안전을 헐값에 팔아 넘겼다’정도가 될 것 같다.


그렇게 개발업체에 호의적으로 허가를 내주었던 삼척시임에도 허가조건까지 무시하는 업체를 마냥 놔두진 못했나보다. 아마도 일정기간 공사를 중단시키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던 것은 아닐까. 기가 찬 것은 기존 6홀이었던 골프장을 9홀로 확장하는데 그 넓은 숲이 파괴된 것이다. 


저런 구호대로만 세상을 살아간다면 정말정말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가증스러운 공무원들...


대체 주민들의 안전과 몇몇 돈을 가진 자의 레저 중 무엇이 중요한가. 그곳에서 빠져나와 걸어가는 도중에는 더 큰 한숨이 밀어닥쳤다. ‘삼척시장’의 명의로 된 경고문에는 취사나 야영 뿐 아니라 ‘산림 훼손을 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문장은 물론 ‘산림보호법 제57조’에 의거 100만원의 과태료를 처하게 된다는 문장도 확실히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삼척시장과 삼척시 공무원들은 대체 무슨 권리로 이 ‘파괴 허가권’을 얻었는지. 시에서 그런 허가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맹방 해안림은 분명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가꾸어 온 공유지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마을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서 이 사업을 진행했어야 했다.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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