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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코볼 같은 똥을 남기고간 산양,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도시를 떠나는 꿈

by 채색 2012. 12. 2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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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며칠 더 묵는 걸 권하는 선생님께 약간 어정쩡하게 대답했지만 정확히 원하는 바였다. 게다가 그는 내설악 쪽에 있는 산양연구소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백담사보다 더 깊이 들어가 있는 그곳은 과거 백담산장이었던 곳이다. 늘 가보고 싶었던 그곳을 가게 되어 정말 기뻤다. 설악산엔 늘 일로 왔기 때문에 갈 기회가 없었다.


아침을 먹고 산책을 했다. 속초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청대산이었다. 눈 쌓인 설악산과 한도 끝도 없는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 우리나라 어디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자연의 은혜를 입은 속초마저도 난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었다. 멋도 없는 밋밋한 네모 아파트가 도시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타고난 집들이 가득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샛노랗게 핀 생강 꽃이 봄이 왔다는 걸 알려주었다.


느지막이 산양연구소로 향했다. 미시령 고갯길이 폭설로 막혀있어 직선으로 ‘뻥’ 뚫려버린 미시령 터널을 지나갔다. 거의 고속도로 같은 그 도로는 자연과 사람의 완전한 분리였다. 걸을 때는 바람소리, 꽃향기, 나무껍질의 감촉, 아름다운 풍경이 다 들어왔지만 차 속에서는 그저 ‘먼 산’일 뿐이었다. 


터널을 뚫고 나온 뒤 곧 좌회전으로 계곡 길을 따라 들어갔다. 관광단지가 발달했던 외설악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백담사 때문인지 깊은 계곡까지 도로가 나 있었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 옆을 차를 타고 지나가니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역지사지라고 하던가? 박그림 선생님은 길 가로 피하는 사람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도착한 곳은 ‘설악산 국립공원 백담탐방안내소’다. 외벽이 자갈로 되어있어 돌집처럼 느껴졌지만 내부는 여느 콘크리트 건물과 다를 바는 없었다. 철거예정이었던 백담대피소를 박그림 선생님의 제안으로 산양연구소로 바꾸었고, 1층에는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탐방안내소로 쓰고, 2층에는 산양연구소로 쓰는 것이다.


그는 90년대 초반에 설악산에 자리 잡은 이후로 ‘어머니 설악산’에 깃들어 살고 있는 산양을 끊임없이 관찰해왔다. 모르긴 몰라도 국내에선 그 만한 산양 전문가도 없을 것이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을 보지 않고 마음으로, 가슴으로도 깊이 바라보기 때문이다.


성인 네다섯 명 누울 수 있는 크기의 작은 방이 세 개, 그것 두 배만한 방이 하나 더 있었다. 한쪽에는 산양과 관련된 수많은 자료들이 쌓여있었고, 다른 쪽에는 관련 책들이 엄청나게 쌓여있었다. 나머지 방 하나가 그의 생활공간. 예산문제도 그랬고, 힘에 부치기도 해 아직 정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한다.


가방을 내려놓고 곧바로 나갔다. “여기까지 왔는데 산양 똥은 보고 가야지!” 그가 자주 가는 산양 똥자리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산양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들의 흔적은 볼 수 있는 것이다. 야생동물을 조사할 때는 거의 언제나 실물보다는 발자국이나 똥을 보고 판단한다고. 



물이 이렇게도 차가울 수 있구나! 느끼게 해준 설악산의 계곡.



군데군데 얼음이 얼어있고, 그 아래로 물은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그는 막대기로 풍경을 휘 저으며 “여기가 다 산양 집이야.”라며 그 속을 틈틈이 돌아다녀봤다는 걸 간단히 말해주었다.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사람냄새’를 지우기 위해 몇 년 동안 생식을 했다는 그이기에 그리 어렵진 않았을 것 같다.


잘 닦여진 정규탐방로를 따라가나 싶더니 다른 계곡이 합수되는 곳에서 멈추었다. 그는 주변을 열심히 살피더니 안 되겠던지 “신발 벗자~”라고 말했다. 징검다리를 찾지 못한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보았던 어떠한 물보다 차가웠다. 발바닥의 통각은 극도로 반응하여 정수리 끝까지 뻗쳤다. 시렸던 발을 달래고 난 뒤엔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는 길로 들어갔다.


도중에는 나무를 토막 내 쌓아놓은 곳이 있었다. 2000년대 중반 한반도에 닥친 강력한 태풍들이 나무를 쓰러뜨렸고, 쓰러진 나무들을 전기톱으로 잘라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이다. “쓰러진 그대로 놔두었으면…….” 박그림 선생님은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힘으로 쓰러진 것은 그대로 자연이기 때문이다. 작은 생명들의 먹이와 집이 될 만한 큰 나무를 ‘보기에 좋지 않아’ 잘라버린건 너무한 처사였다. 특히나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고자 법으로 지정한 국립공원에서 말이다.


군데군데 눈도 쌓여있고, 그늘진 계곡엔 아직까지 얼음이 얼어있었다. 그곳에선 신발을 벗을 필요도 없이 얼음위로 건넜다. 곳곳엔 산양 똥과 노루 똥이 흩어져 있었는데 약간 검고 굵은 것이 산양의 똥이었다. 


나는 이제 목적지에 다 왔나 싶어 사진을 찍고 “와~, 와~”하며 늑장을 부렸는데 박그림 선생님은 이미 멀리 떨어져 있었다. 따라잡길 몇 차례, 굽은 길을 도니 그와 유하가 가파른 경사를 오르고 있었다. 커다란 절벽 아래의 아찔한 곳이었다. 겨우 올라 당도한 그곳엔 연한 빛의 초코볼같기도, 톱밥을 동그랗게 뭉쳐놓은 것 같기도 한 산양 똥이 가득했다. 꼭 포대자루에서 쏟아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쉬는 곳에서 이렇게 똥도 싸” 그의 말이 빈말이 아닌 게 그 자리에서 바라본 풍경이 정말 좋았고, 똥은 메마르고 냄새도 거의 없었다. 산양들도 멋진 풍경을 즐기는 듯했다. 그는 비닐봉투에 한가득 산양 똥을 채우고는 펜으로 뭔가를 적었다. 오늘 조사의 목적을 달성한 뒤 다시 길을 내려갔다. 



거대한 바위 앞에서 선생님은 멈추었다. 그곳에는 엄청난 양의 산양똥이 있었다.



그들의 똥은 꼭 초코볼 같다. 하지만 초코의 냄새도 똥의 냄새도 없다.



연구를 위해 비닐주머니에 산양똥을 담고 채집한 장소와 날짜,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개울을 덮고 있던 얼음이 녹으며 고드름이 생겼다. 그 아래로 개울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다.



아까 건너왔던 얼음 아래에는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다. 꼭 얼음을 받치고 있는 기둥 같았지만 그 아래로 물이 세차게 흘러갔다. 장난삼아 유하에게 하나 떼어 줬더니 오독오독 씹어 먹으며 “어? 진짜 맛있네!”한다. 먹으라고 줬던 건 아니었는데, 나도 뺏어 먹어보니 단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또 한 번 발의 통각을 신나게 느끼며 계곡을 건넜다. 강폭이 조금만 더 넓었다면 도중에 쓰러졌을지도 모르겠다. 신발을 신은 뒤 상류로 조금 올라갔다. 거기엔 데크가 계곡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그곳에 올라 계곡을 바라보았다. 설악산 능선이 이어져 있는 모습과 우리 발 아래로 물이 흐르는 것이 한 눈에 들어왔다. 


잠시 풍경에 빠졌다가 돌아 나오는 길. “데크를 걸으니 어때? 사람들이 이 길을 걸으며 무얼 느낄까?” 박그림 선생님이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걸음이 훨씬 빨라져 있었다. 꼭 도로 위를 걷듯 성큼성큼 앞만 보고 걷고 있는 게 아닌가. 확실히 자연스러운 길은 주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반면에 이런 인공 길은 주변과 거리를 두게 만드는 것 같다. 


자동차와 자전거의 차이, 자전거와 걷기의 차이를 확연하게 구분하고 있던 나로써 걷기에도 길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속도, 숨 쉬는 공기, 땀, 바닥의 감촉 등 여러 가지 이동조건에 따라서 주변은 어마어마하게 다르게 보인다. 차를 타고 지나갈 때는 단순히 ‘산’이었던 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 ‘엄청나게 힘든 산, 짜릿한 산’이 되고, 걸으며 지나갈 때는 ‘하루 자고가야하는 산, 산새 소리가 아름답던 산’이 된다. 이 때 걸음은 자동차나 자전거보다 훨씬 더 많은 인연(사람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바람이든 물이든 뭐든)을 만들어준다. 그런데 걷는 길의 차이에 따라서도 구분을 하는 선생님, 역시 나의 멘토이다. 그가 그토록 케이블카 건설을 반대하고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지도 한층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밤이 깊었다. 방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먹고는 줄 곧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하며 있었던 일이며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들. 전에 몰랐던 그의 이야기도 느긋하게 들을 수 있었다. 바깥이 어두워지는 것에 따라 실내의 분위기도 바꾸었다. 형광등이 기본 조명이었지만 나중에는 백열등 한 개로, 그 다음엔 촛불로 바꾸어 밤을 즐겼다.



울산바위로 오르는 철계단. 사람들은 오를 수 없는 나무를 이제는 마음껏 오르고 있다. 좋은 일일까 안좋은 일일까?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다음날은 설악산 소공원 일대를 돌아보고 울산바위를 다녀왔다. 설악산을 멀리서만 봤다는 유하에게 한번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백담사가 있던 외설악과는 역시나 많은 차이가 있었다. 돈으로 계산되는 자연의 풍경, 편의만 생각하는 정책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심지어 신흥사 앞에는 산간 계곡에 포클레인이 들어가 온통 휘젓고 있었다. 모습을 자주 바꾸는 자연하천을 사람의 편의를 생각해 단단히 고정된 하천공원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울산바위에 오른 한 대학생 무리는 자연은 고사하고 주변 사람들마저도 무시하며 큰소리를 내고, 심지어 비명을 지르는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예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세상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왜 모를까.


마침 내려오는 길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좋은걸 보러왔다가 또 눈살만 찌푸리고 내려왔다. 박그림 선생님은 새앙쥐 같은 우릴 보고 목욕탕엘 가잔다. 계곡 얻어먹기만 했기에 ‘목욕비는 내가 내야지!’ 마음먹었지만 선생님은 지역주민 할인권을 무기로 또 못 내게 했다. 


“선생님, 계속 받기만 해서……. 고맙습니다.” 내 말에 선생님은 “계속 줄 수 있어서 내가 고맙지!” 라고 대답하신다. 찌푸려졌던 마음이 풀을 먹인 한지처럼 바짝 펴졌다. ‘선생님 같은 분을 계속 존경해서 저도 그런 사람이 될게요!!’ 이날따라 목욕탕 물이 유난히 더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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