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대한민국 대표 환경운동가, 박그림 선생님을 만나다.

도시를 떠나는 꿈

by 채색 2012. 12. 25. 17:52

본문

우리나라 최북단까지 올라가는 마지막 시내버스의 종점, 마차진 해변에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도로에는 군인들이 타고 있는 얼룩무늬 차량들이 무척 많았다. 위도 상 최고 위쪽인데다 동해를 끼고 있는 지역이라 더 삼엄한 것 같다.


나 역시 한 때는 군인이었지만, 군인이나 군대차량을 볼 때면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늘 두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해변에는 빨강색 글씨로 ‘접근금지’ 팻말이나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있다. 소가 붉은 색을 보면 흥분한다고 했던가?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내가 딱 그 꼴이다. 


왠지 그 선을 넘으면 영화 <해안선> 속의 장동건이 그랬듯 군인들은 자동소총으로 총알을 퍼부을 것만 같았다. 그 탓에 화진포의 맑은 바닷가는 물론 속초까지 계속 이어지는 해변에선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해변에도 늘 시야 안에는 철조망을 비롯한 ‘접근제한선’이 있었다. 더군다나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대부분의 해변은 일정기간의 일정시간에만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 딱 한 가지는 모두가 혐오스런 철조망이 아니라 도색된 쇠파이프 담벼락도 있었다는 점이다. 설치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페인트칠도 벗겨지지 않은 상태다. 칼날이 다닥다닥 붙은 윤형철조망이 없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면 다행. 그 철조망을 볼 때마다 살점이 뜯겨나가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철조망을 없애려면 모두가 총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대체 왜 이렇게 총을 겨누고 살아야하는지! 엄청난 돈을 퍼부어 살인기계를 만들고, 또 살인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것인지!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철조망 위를 마음껏 날아다니는 갈매기가 한심한 듯 내려다보는 것 같다.



동해바다에서 흔히 만나는 철조망.



사람들이 건너다니지 못하게 막아놓았지만 자연은 숯하게 건너다닌다.



속초에 닿을 때까지 며칠간은 비슷한 풍경의 연속이었다. 아름다운 바닷가를 철조망이 막고 있는 풍경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해안선과 거의 평행으로 달리는 내륙 쪽의 산맥 등줄기가 눈요기를 제대로 시켜줬다는 점이다. 능선 주변으로만 하얗게 쌓인 눈은 마치 히말라야의 고봉을 연상케 했다. 그 덕에 길 오른쪽으로 건물과 숲이 사라질 때면 얼굴은 항상 산 쪽을 향해 있었다.


속초에 거의 다 와서는 설악산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봉포항 주변에서 하루를 보낸 뒤 출발했을 땐, 아침햇살이 진하게 비추고 있었기에 더 그랬다. 주변의 봉들과 다르게 새하얀 모자를 덮어쓴 건 분명 대청봉이었다.


영랑호에서 본 설악산이 압권이었다. 바닷길이 끝나고 속초시내길에 접어들고부터는 딱히 시선을 둘 데가 없어 줄 곧 설악산 쪽을 향해 있었다. 뭔가에 홀린 듯 맹하니 쳐다보며 걷고 있는데 순간 시야가 넓어지고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늘을 닮은 잔잔한 호수위로 설악산의 파노라마가 펼쳐진 것이다.


마침 설악산이 잘 보이는 곳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설악산을 몇 번이나 와봤으면서도 이런 곳엘 왜 안 와봤을까?’ 멋진 풍경을 앞에 두고 후회 아닌 후회를 했다. 얼핏 판단하기엔 멀리서 설악산을 바라보는 곳 중에선 가히 최고의 장소였다.


대청봉에서부터 울산바위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구불구불한 마루금이 岳산의 그것이었다. 하늘과 맞닿은 봉우리에서 뻗어 내려간 줄기들은 꼭 나뭇가지 같다. 호숫물이 조금만 더 잔잔했다면 물 위에도 하나 더 나타났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주변이 ‘일반 시가지’로 조성되어 있는 탓인지 이 ‘최고의 장소’는 딱히 인정을 받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저 여느 도시의 ‘강변 산책로’정도였다. 이런 풍경이라면 또 하나의 자랑거리로 삼아도 좋을 텐데 말이다.



영랑호에서 바라본 설악산. 산 중턱에 검은 바위들이 울산바위다.



이날의 목적지인 박그림 선생님 댁에는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스마트 폰에 주소를 입력하니 집 앞까지 자세히 안내해 주었다. 마당이 넓은 주택이었는데 개가 먼저 반겼다. 곧 산양 같은 선생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환경운동가로 설악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 그를 본 것은 녹색연합 활동가로 막 활동을 시작했을 때다. 설악산 대청봉 케이블카 건설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를 때였는데 신입활동가 교육차 방문했었다. 모든 게 신기하게 느껴지던 그 때, 그를 보자마자 멘토로 삼아버렸다. 물론 나만의 결정이다.


“성만아, 왔어?” 언제 들어도 친근한 그의 목소리. 별채로 향했다. 그곳에선 사모님이 우릴 위해 방을 닦고 있었다. 늘 박그림 선생님만 봐왔던 터라 궁금했던 그녀,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이 무거운 짐을 들고…….” 처음 뵈었지만 역시나 곱고 친근했다.


별채 방 안에는 책들이 가득했다. 알이 꽉 찬 옥수수마냥 책장엔 책이 빼곡히 박혀있었다. 딱 책 높이만한 한 칸엔 앞뒤로 두 줄로 되어있었다. 보이는 쪽에는 최신 책, 뒤쪽에는 옛날 책인 것 같았다. 족히 수천 권은 될 것 같았다. 


게다가 본채에 저녁을 먹으러 건너갔을 땐, 별채만큼 되는 책이 더 있었다. 예전에 왔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눈을 떼지 못했다. 눈여겨보던 유하는 “역시, 읽고 싶은 책들이 다 있는 것 같아요.”라며 강아지처럼 반겼다. 나중에 여쭤보니 사모님과의 연애도 책 이야기로 시작됐다고. 


“케이블카는 어떻게 되고 있어요?” 내가 물었다. 그는 대청봉에서 누드시위를 할 만큼 케이블카 사업의 불합리성에 대해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 양양군에서 오색약수 관광지와 설악산 대청봉을 잇는 케이블카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리산 네 곳, 월출산, 설악산, 한려해상국립공원 중에서 케이블카 시범사업 할 곳을 선정할거래…….”


환경단체의 압력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국립공원 관리공단 스스로도 케이블카를 마냥 허가를 할 순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형식적인 절차를 밟는 듯 했다. 이와 관련된 라디오 토론회에서 담당 공무원은 시범사업지 선정은 한 두 군데만 될 수도 있고 타당성이 있다면 모두가 다 될 수도 있다고 했다한다. 이에 대해 박그림 선생님의 “그럼 타당성이 한 군데도 없다면 하나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대답을 회피했다고.



박그림 선생님댁을 늘 지키고 있는 '콩'



책장에서 책을 꺼내고 있는 박그림 선생님.



박그림 선생님은 젊을 때부터 산을 좋아해 자주 찾았다고 한다. 그 땐 산을 가기 위해서는 한 달 전부터 지도를 살피고 구간을 어떻게 갈 것인지 준비를 하는 등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은 산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도 알아보지 않는 것은 다반사고, 심지어 무리에 이끌려 따라오는 경우도 있다 한다.


선생님의 말씀은 남 얘기가 아니었다. 나 역시 무심코 찾아가 불평불만을 늘어놓기가 일쑤였다. 설악산을 ‘내 집 드나들 듯’하는 선생님께 등산을 온 사람들이 많이 묻는다고 한다. “정상이 얼마나 남았어요?” 이렇게 묻는 사람들은 마음이 이미 정상에 간 상태고, 몸이 그걸 따라가다 보니 힘든 것이란다. 보통의 사람들은 산의 ‘정상’이 목표인 경우가 많다. 어느 산에 가더라도 ‘정상’을 찍어야 그 산에 다녀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명관광지에 가서는 특정 유물 앞에서 꼭 ‘인증샷’을 찍어야 다녀왔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어도 막상 그곳을 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 자신은 정상만을 생각하며 쫓아가지만 그 주변의 자연은 늘 주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것들에는 무관심하다. 정상을 찍고 오는 동안에 온 자연의 영향으로 건강도 찾고, 기분도 좋아지는 것임에도. 


자연에 무관심한, 자연과 교감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오직 정상만을 오르기 위해 만드는 것이 케이블카이다. 분명 자연은, 생명을 살리는 ‘어머니’임에도 돈벌이의 대상으로밖에 삼지 않는다. 도시에 살며 자연과 분리시키는 것도 모자라 이젠 깊은 산에서도 ‘편의’를 빌미로 따로 떼어놓는 것이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