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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 날 제정 후 40여년, 우리는 무엇을 하고있나?

지구를 지켜라

by 채색 2010. 6. 5.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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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개발사업으로 인해 자갈밭이었던 자신의 삶 터를 잃고 공사장에서 방황하고 있는 검은등할미새


인간은 산업혁명과 의료혁명(천연두 치료등) 이후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기계를 이용하여 큰 생산성을 이룩해 냈고, 손 도 못쓸만한 병이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치료가 가능해졌습니다. 조선시대 그 이전에는 아이가 태어나도 이름을 짓지도 않았다 합니다. 일찍 죽을 것을 염려해 건강하게 살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지요. 100일 잔치가 그래서 있던가요?

역시나 인간은 욕심을 부리는 존재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려고 했습니다. 뭔가 하나를 빼앗으면 대단히 뿌듯해 합니다. '도전', '개척', '꿈', '성공' 이런 단어들을 굉장히 좋아하고 애용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살펴보면 이런 단어들 속에는 인간을 비롯해 이 땅의 수많은 생명들과 공생할 수 없는 감정들을 숨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것들을 이루는 동시에 어떤 생명체는 그것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기계의 발달로 인해 과거엔 상상할 수도 없는 편리를 누리고 있고, 상상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랜 과거의 누군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앞에 뚝딱 나타나 이런 광경을 지켜본다면 '같은 지구'가 아니라 '외계'에 와 있다는 착각을 할 것 같습니다. 그 만큼 사람들은 이 땅에서 빠르게 변화했습니다. 지구 역사 속에서 정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바뀌어버렸습니다. 우리는 과거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와 함께 찾아온 것이 있습니다. 바로 '환경문제' 입니다. 이 '환경'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을 중심에 둔 개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환경의 변화가 인간에게 이롭지 않게 작용하는 것을 두고 '환경문제'라고 합니다. 이 문제의 발단은 앞서 말한 산업혁명과 의료혁명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구의 급증과 그를 유지하기 위한 자원의 개발은 자연스레 '환경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편리를 추구했지만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 풍력발전단지가 세워지던 맹동산 정상일대. 화석연료사용을 줄여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자는 취지의 '신재생에너지' 풍력발전이지만, 이 발전단지는 생태자연도 1급의 숲을 모조리 파괴한 후 들어섰다. 과연 어떤 것이 가치가 있었을까?! 실제로 이곳은 숲이 유지되었을 때 탄소흡수효과가 더 높은 것으로 나왔다. -.- 정확히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아무런 고민도 하지않은 채 이것역시 개발 사업으로만 여겼기 때문에 이런 황당무계한 사태가 일어났고, 현재도 여러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진행중이다. 또, 해안가에 설치되는 조력발전도 마찬가지다.


석유자원의 무차별적인 사용과 숲의 파괴는 끔찍한 결과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일례로 1952년에 런던에서 일어난 '런던 스모그' 사건은 세계인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습니다. 프레데릭 백의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는 만화를 보신 분은 알겠지만 그 영상에서 표현됐 듯 인간은 서로 못가져 안달이 났었고, 그렇게 자연은 망가지고 인간은 파괴되었습니다.

전쟁 때문에 민둥산으로 변해버린 우리나라의 산들이 한창 소나무로 채워질 무렵 유라시아 대륙의 끝 스톡홀름에서는 색다른 회의가 열열렸습니다. 이는 극심한 환경오염에 대처하기 위해 1968년 UN총회에서 환경회의 개최를 결의했고, 1972년 'UN 인간환경선언'이 채택되었던 UN환경회의가 열렸던 것입니다. 이 날이 6월 5일 이었고, 이를 꾸준히 기억하기 위해 기념일로 정했습니다. 이 회의에는 한국을 비롯해 113개국의 대표가 참석했고, 때문에 우리나라도 매년 이 날을 기념일로 지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환경의 중요성을 공표한 '환경의 날'을 제정한 지 40여년이나 지난 지금, 우리는 무얼하고 있습니까?

모든 것은 '돈'이 중심에 있습니다. '환경'도 돈이 될 때 환경이지 돈이 안된다면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가끔씩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갈 때 번쩍 이슈로 떠올랐다가 가라앉길 반복합니다. 그리곤 망각합니다. 다시 '돈'을 찾습니다. 개발을 외칩니다. 편리를 외칩니다. 경제를 외칩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저에게 가장 큰 이슈는 바로 '국립공원 케이블카'와 '4대강 개발사업'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돈'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 '환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모두 '녹색'을 덧씌워 눈속임을 한 뒤 개발업자에게 큰 돈을 안겨주는 것 다름 아니었습니다. 지역주민들에게는 이 사업으로 인해 해당 지역이 크게 발전할 것이라 거짓을 이야기하고 국민들에게는 '이것이 녹색'이라는 황당한 논리를 펼쳤습니다.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자는 주장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놓은 것이지 사람들의 관광을 위해 지정해놓은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우수한 생태적인 특성 덕에 화려한 풍광을 자랑하기에 그것을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케이블카는 국립공원을 관광지화 시키고 관리정책의 촛점을 바꿀 것입니다. 공원 내 생태보전이 아니라 관광 이용에 맞추어지겠죠. 더군다나 지리산과 설악산 모두 4~5개씩 설치를 추진하는 것이니 그 속의 동식물들의 삶터는 무참히 짓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도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이후 높은 이용압력을 받고 있는 마당에 케이블카까지 설치된다면 엎친데 덮치고 서리낀데 눈까지 쳐붓는 상황이 됩니다.

4대강 개발사업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겨울에도 잘만 흐르는 4대강을 두고 물이 부족하느니 물이 많아야 잘 흐르니 하는 얘길하며 국민들을 우롱하고 정작 물이 부족한 강원 산간내륙지방 같은 곳에는 신경도 안씁니다. 홍수도 마찬가지죠. 4대강 지역에서는 이미 홍수대비가 잘 되어 홍수가 거의 나지 않는데도 홍수대책을 세워야 하니마니 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욱~ 하는군요)

저는 현장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을 직접 대면했습니다. 충격 그 자체였죠. 그 속에, 그 주변에 그렇게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어른 팔뚝만한 누치떼가 눈앞에서 죽어나갔고, 그것을 은폐하려 물고기들을 포크레인으로 덮어놓은 곳도 발견했습니다. 멸종위기종 꾸구리의 최대 서식지일지도 모르는 지역이 아무렇게나 파헤쳐졌고, 아예 살 수 없도록 그의 집 '여울'을 없애버렸습니다. 자갈밭이나 모래밭에서 사는 물떼새나 할미새들의 삶 터가 송두리채 날아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정부에서는 괴상한 사람을 '생태학자'라고 내세우며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모래밭은 사람한테는 아름다울지도 모르겠으나 다른 생명에게는 사막같은 곳'이라 했던가요?


|원래 강 바닥이었던 이곳, 물을 빼내면서 작은 웅덩이 곳곳에 물고기가 모였고, 작은 족대(그물)로도 물고기들이 그냥 잡혀올라왔다. 그 중 대부분은 죽은 상태였고, 우리가 고발한 이후 살려주는 척 행동은 했으나 살려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들 뿐이었다. 구불구불 한 바닥지형은 다양한 생명들의 보금자리가 되지만 다 준설하여 평탄화가 된 이후에는 적응력이 높은 커다란 물고기만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제가 자라는 동안 가장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8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개발세대' 또는 '파괴세대'라 불릴만 한 것 같네요. 인간의 무지함을 가장 잘 드러냈던 기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쟁하고 이겨서 가지고 또 가져라. 가지지 못하면 실패자다. 성공해라. 부자가 되어라. 도전해라. 성취해라. 이러는 동안에 우리의 생명줄인 자연은 파괴되고 망가지고 썩어가고 있습니다.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널리 공표했던 1972년의 6월 5일, 40여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거짓 개발로 환경을 지킬 수 있다고 일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그럴 것이라고 눈을 꼭 감습니다. 우리의 욕심을, 우리의 연봉을 채우기 전까지는 눈을 뜨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욕심이 채워질 때, 이미 우린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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